[동아광장/임형주]“한국 음악가는 슈퍼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31일 03시 00분


올해로 폴란드가 낳은 세기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프레데리크 쇼팽이 탄생한 지 200주년이 된다. 폴란드는 올해를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의 해로 정하고 기념음악제 개최와 주화 발행, 쇼팽의 고향인 바르샤바 시내 중심에 최첨단의 쇼팽 벤치까지 만드는 등 국가브랜드 제고는 물론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폴란드 제2의 도시라 불리는 크라쿠프를 포함해 폴란드의 도시 전체가 쇼팽 관련 행사들로 들썩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모션-매니지먼트도 직접 해결

바르샤바 국제공항의 이름이 프레데리크 쇼팽 국제공항이라는 점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폴란드는 쇼팽의 나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 동유럽의 어두운 공산주의 국가라는 단점을 쇼팽이라는 단 한 명의 음악가로 개선할 수 있는 폴란드가 부럽기만 하다.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는 어떤가. 수도 빈은 물론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는 국제공항 이름부터 기념 초콜릿까지 매년 모차르트 브랜드 효과로 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 한국의 음악신동 1호이자 해외진출 1세대 음악가인 피아니스트 한동일 선생을 필두로 1970년대 백건우, 정트리오(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등의 세계무대 등장 이후 1980년대 한국의 3대 소프라노로 꼽히는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 및 서혜경 백혜선 씨, 1990년대 장영주 장한나 씨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음악가를 꾸준히 배출했다. 동양의 작은 나라가 세계 음악계를 주름잡는 신동이나 음악가들을 끊임없이 배출해 낸 것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드문 경우이며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이것이 밑거름이 돼 세계 유명 국제콩쿠르 상위권에서 늘 한국인 입상자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신동이나 영재 배출이 미미했던 작곡 분야에서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2010년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작곡 부문에서 한국의 전민재 씨(23)가 우승했다. 그는 1953년 창설돼 4년마다 개최되는 이 부문의 최연소 우승자다. 지난해 우승자도 재독 한국인 작곡가 조은화 씨(37)였다.

최근 한국 작곡가들의 선전을 보면서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 유학시절에 만났던 한 프랑스인 음악 관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참 대단해. 모두 슈퍼맨 아니면 원더우먼 같아.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처럼 정부가 나서서 후원을 해주지 않는데도 혼자서 잘 활동하잖아. 연주 하나만 신경 쓰기도 힘들 텐데 본인이 직접 매니지먼트, 프로덕션 또 후원사까지 찾아다니는 걸 보면 참 열정적인 것 같아. 그래서 늘 연주도 열정적이고 감동적으로 하나 봐”라는 내용이었다. 요즘도 외국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칭찬하려는 의도겠지만 이런 말을 듣고 나면 한편으론 씁쓸하다.

日선 정부가 나서 후원기업 연결

일본은 1970년대부터 정부 차원에서 음악 신동과 젊은 음악가를 후원하고 대기업과 연결시켜 주는 일을 해왔다. 그 결과 일본 내 전국콩쿠르에서만 상위권에 입상하면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지 않아도 외국의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또 국비 장학생 제도를 폭넓게 운영해 유학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고 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음반 제작 또한 유수의 클래식 기획사와 엮어줘 비교적 쉽게 음반을 제작할 수 있다. 전국투어 콘서트나 공영방송 클래식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주는 등 포괄적인 홍보까지 해준다. 음악도들은 자기 연주만 잘하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도 정부 차원에서 재능 있는 젊은 음악도를 후원하고 육성한다. 한국도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아쉽기만 하다.

작곡 분야는 기악이나 성악에 비해서 활동이 미미했지만 그동안 정부 차원의 큰 후원 없이도 윤이상과 진은숙이라는 세계적인 작곡가를 배출했다. 윤이상 선생은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전 세계 무대에서 추앙받고 존경받았으며, 진은숙 씨는 작곡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작곡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를 LP, CD, DVD 등과 같은 현대적 기록매체에만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작곡가들은 음악적으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형식인 악보에 자신의 작품을 남긴다. 이 작품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어느 누군가에 의해 늘 새롭게 부활하고 기억된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연주가가 ‘찬란한 꽃’이라면 작곡가는 ‘불멸의 꽃’이다. 전 세계적으로 작곡가 기근현상을 겪고 있다. 오늘날엔 쇼팽이나 모차르트 같은 전설적인 작곡가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작곡계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한국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응원을 보내야 할 때다.

임형주 팝페라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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