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 열풍’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습니다. 젊은 사람이건 늙은 사람이건 제 나이보다 덜 들어 보인다고 말하면 얼굴에 환하게 꽃이 피어납니다. 얼굴과 몸매 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신의 나이가 몇 살로 보이냐고 내놓고 묻는 여성도 있습니다. 실제 나이보다 아래로 짚으면 매우 기뻐하지만 높게 짚으면 내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요즘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동안이십니다” 하는 말을 건넨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이 내놓고 나이를 묻는 경우 자신의 예상치보다 다섯 살 정도 아래로 말하는 게 기본적인 남성 예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형외과에서는 동안을 만들기 위해 안면윤곽 수술을 광고합니다. 간단한 시술방법으로 보톡스와 필러를 권장하기도 합니다. 한의원에서는 주름 개선, 피부 탄력 증진, 리프팅 효과가 있다며 동안침을 광고합니다. 동안의 기본 요건인 깨끗한 피부, 통통한 볼살은 물론이고 눈 밑의 주름을 없애기 위한 안티에이징 화장품과 성형식품 광고도 도처에 넘쳐납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도 동안 여부로 첫인상이 좌우되고 심지어는 동안대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몸짱 얼짱 에스라인 브이라인 꽃미남 꿀벅지를 거쳐 바야흐로 세상은 동안의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안(童顔)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아이의 얼굴’입니다. 어른에게 적용한다고 해도 ‘어른아이 같은 얼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동안 열풍은 어린아이 얼굴이 되고 싶어 하는 기성세대의 집단적 열광입니다. 어른이 왜 어린아이 얼굴을 가지려 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사회에는 책임 대신 퇴행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이 든 몸에 어린아이의 얼굴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과연 뭘까요.
미국의 유명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갓난아이로 죽어가는 한 남자의 기이한 일생을 다룬 소설입니다. 영화는 소설에 없는 사랑의 얼개를 세워 벤자민이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 안겨 갓난아이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콧등이 시큰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시간성을 벤자민은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영화는 긴 여운을 되새기게 합니다.
동안에 집착하는 과도한 욕망은 일그러진 현시(顯示)욕을 반영합니다. 자신의 실제 나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적 미성숙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몇 살로 보이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것도 자신감이 아니라 히스테리의 다른 양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불행했던 벤자민 버튼의 일생을 생각한다면 동안에 대한 일그러진 집착과 열망이 얼마나 면괴스러운 일인지 되짚어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아이와 같은 해맑은 마음입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살면 주름 잡힌 얼굴에도 자연스레 동안이 떠오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환한 동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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