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 발표를 지켜본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점잖게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뻔한 내용”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외환위기의 유산(遺産)인 우리금융을 시장친화적 방식으로 돌려준다는데 왜 실망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걸까.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안은 오랜 산고 끝에 가까스로 윤곽을 드러냈다. 자회사인 지방은행을 분리 매각하고 몸통인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수순을 내세웠다. 민영화의 방안으로는 확정적인 결론 없이 ‘지분 매각 또는 합병’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썼다. “시장의 창의적 제안을 위한 것”이라는 게 공자위의 설명이었다.
이 방안에 실망 분위기가 큰 것은 우선 정부가 지난해 12월 밝혔던 방침에서 더 진전된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자회사 분리 매각, 다른 금융회사와 인수합병, 지분 분산 매각 등을 검토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안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것은 ‘정부안이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라며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사회의 속성을 ‘시장 자율’로 윤색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뻔한 스토리’를 차일피일 미루며 마감에 쫓기듯 7월 말에 발표한 것도 실망감을 키운 배경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당초 시한이었던 6월 말 “민영화의 밑그림을 내놓지 못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죄송스럽게 됐다”며 스스로의 약속을 번복했다. 한 달의 기다림이 배신당한 모양새다.
실망감은 민영화 방안 발표 당일 우리금융 및 우리투자증권의 주가가 3%대의 급락세를 보인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금융은 일반 공기업과 달리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하는 시장형 회사이지만 정부 통제를 받으며 관료사회의 속성을 닮아가고 있다. 정부 입김 속에 경영진이 자주 교체되면서 대규모 파생상품 투자 손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 책임경영 의식이 결핍돼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나타났다. 그래서 조기 민영화의 중요성도 더욱 부각됐다.
정부도 이번 발표에서 조기 민영화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약속까지 어겨가며 ‘시장에서 알아서 제안하라’고 주문한 게 조기 민영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되묻고 싶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에 시장에서 불신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문해 보길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