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베트남전쟁에 관한 미국 국방부의 1급 기밀문서)에 대한 첫 특종을 보도한 것은 1971년 6월 13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펜타곤 페이퍼 작성 과정에 참여했던 대니얼 엘스버그 전 MIT 국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이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였다.
지난주 미국의 좌파와 우파는 보기 드문 의견일치를 이뤘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아프가니스탄전 일지는 베트남전 때 펜타곤 페이퍼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스버그의 폭로 역시 베트남전의 침체 국면을 공식화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펜타곤 페이퍼가 미군의 베트남전 철군을 가속화하는 중대한 계기가 된 것처럼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미국의 아프간전 개입을 매듭짓는 전조가 될 수 있다.
펜타곤 페이퍼에는 매우 은밀한 정보가 담겨 있었기에 충격은 엄청났다. 반면 아프간전 일지에 대해 대중은 약간 무관심한 반응을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아프간전 일지 자체의 문제도 있다. 정책 수립 과정을 조직적이고 명료하게 기록한 펜타곤 페이퍼와 달리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아프간전 일지는 급하게 써서 이해하기 어려운 편지처럼 작성돼 있다.
9년을 끌어오며 미군 사망자 최고치를 기록한 아프간전 자체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은 폭로된 아프간전 일지에 대해서도 하품으로 일관하는 태도로 연결되고 있다.
이미 많은 국민은 아프간전에 대한 신뢰를 접었고 관심을 끊었다. 무엇보다 전쟁을 지지해 오던 보수파의 동요가 의미 있는 대목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폭로된 일지에는 지금까지 아프간전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프간전에 대한 논란이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미국인들은 테러에 반대한다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 또 아프간전 일지에서 드러난 끔찍한 현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돈세탁을 거친 미국인들의 세금이 파키스탄 정부를 통해 미국인을 살해하는 탈레반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사실 말이다.
대다수 미국인은 펜타곤 페이퍼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잔인하고 끔찍했던 베트남전에서 빠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펜타곤 페이퍼가 베트남전 정책에 큰 변화를 주진 않았다. 1968년 53만7000명이었던 미군의 규모는 1971년 21만3000명으로 축소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닉슨 전 대통령과 달리 인기 없는 전쟁에 계속 군대를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갤럽의 최근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58%가 2011년 중반 철군에 착수한다는 그의 약속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1971년 사건을 다시 검토해 본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올 12월 전쟁에 대한 정책을 재평가할 때 그의 확신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 특종으로 퓰리처상을 탔다. 같은 해에 퓰리처상을 받은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의 기사도 곱씹어 봐야 한다. 그가 폭로한 기밀은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백악관이 외교적으로 파키스탄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펜타곤 페이퍼 폭로 당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는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40년 뒤에 미국을 또다시 수렁에 빠뜨릴 지역은 동남아시아(베트남을 의미)가 아니라 남아시아(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포함한 지역)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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