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회사 작성은 두 달 전부터 추진됐으며, 최근 대기업 역할론 등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전국경제인연합회 해명자료)
“정부의 최근 정책을 우려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으나 이는 발언 취지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한국무역협회 해명자료)
“오늘 개최 예정이었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및 공정거래 질서 정착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은 사정상 연기됐음을 알려드립니다.”(중소기업중앙회 배포자료)
지난주 전경련과 무협, 중기중앙회 등 경제단체 3곳의 부회장이 줄줄이 자신의 발언이 잘못 알려졌다며 해명하거나 긴급 기자회견을 공지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하는 소동을 벌였다.
지난달 28일 제주하계포럼 개회사에서 조석래 회장을 대신해 “정부와 정치권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개회사를 읽은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은 이것이 전경련의 정부 비판으로 보도되자 “진의가 잘못 알려졌다”며 화급히 뒷수습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저녁 기자들을 만나 “정부가 압박하는 식으로는 제대로 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 오영호 무협 부회장도 발언이 기사화되자 “와전됐다”며 해명자료를 냈다.
서병문 중기중앙회 부회장은 지난달 30일 전경련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했다가 회견 시간을 3시간 남기고 별다른 설명도 없이 돌연 취소했다. 취소 이유를 묻자 그는 “너무 대기업을 몰아붙이는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경제단체 3곳에서 실질적인 ‘입’ 역할을 하는 부회장 3명이 같은 시기 비슷하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대기업들은 정부에 밉보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중소기업계는 그런 대기업들의 심기를 살핀다. 정부-재계, 대-중소기업 간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 되고, 우월한 위치에 있는 한쪽의 ‘횡포’가 다른 쪽에게 그만큼 두렵다는 증거다. 경제단체들이 제 목소리를 못 낸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참에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소동의 근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급작스럽게, 각론도 없이 ‘대기업 책임론’을 연이어 쏟아낸 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책 효과의 측면만 보면 기업인들을 긴장시키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 그다지 세련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정부의 엄포에 우왕좌왕하는 기업과 경제인 단체들을 보니 구태의연한 과거의 행태가 되풀이되는 것 같아 입맛이 영 씁쓸하다. 꼭 이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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