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지형]아이폰에 담긴 인문학의 위력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4일 03시 00분


마니아는 아니지만 아이폰4의 출시를 무척 기대한다. 오래전 사용했던 애플 컴퓨터에 대한 향수도 아니고 아이폰 출시에 따른 국내 소비자로서의 박탈감에 대한 보상심리도 아니다. 아이폰 생태계로 발생한 디지털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경외심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폰4에 대한 기대감은 애플과 삼성의 차별성에 기인한다. 삼성은 갤럭시S를 통해 아이폰4에 맞먹는 고도의 기술을 과시하며 세계 기업으로서의 수월성을 구가하고자 한다. 수많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갤럭시S는 아이폰의 모습을 쫓아가는 모방품일 뿐이다. 제품 출시 행사에서 보여줬듯이 애플은 가치와 문화를 판매하지만 삼성은 성능 좋은 기계만을 판매할 뿐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우리가 선진국을 모방하는 추격형 사회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선도형 사회로 변모해 간다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만 한국의 대표 기업조차 세계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내놓을 만한 능력이 없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애플은 단순히 기술개발 기업이 아니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을 융합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의 니즈에 맞게 쉽게 사용 가능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잡스가 말하는 점은 단순히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이 아니다. 그는 인간 중심의 경영, 인간 중심의 제품, 인간 중심의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창출하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글쓰기 교육만을 강화하여 이공계 대학생의 인문적 소양을 넓히는 정도에 만족한다.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가 서너 권의 인문 저술을 대강 읽고 활용해서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면 인문과 자연의 융합연구라고 적지 않은 자금을 지원한다. 방송 다큐 역시 인문학자의 조언을 건성으로 듣고 제멋대로 편향된 시각으로 제작한다. 조언에 대한 보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방송에 나간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식이다.

인문학을 홀대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은 선도형 사회로 진입할 수 없다. 인문지식의 실용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외면하는 한 다른 나라와 기업이 창출한 가치를 재생산하고 추종하는 2류 국가로 머물 수밖에 없다. 인문지식을 모든 지식의 근본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전문성 없는 ‘교양’으로 계속 폄하한다면 한국엔 선진국의 미래가 없다.

오늘날은 인문경제의 경쟁 시대다. 인문지식을 기업 발전의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기업과 인문지식이 만나는 융합의 교차로를 건설해야 한다. 세계 대학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인문사회 경쟁력은 자연계열보다 훨씬 높다. 이미 인문학에는 37만여 건의 방대한 지식이 축적돼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통찰력, 가치와 문화를 창출하는 역동성을 확대하여 상품의 기획과 제작, 소비 및 유통 모든 과정에 투영하도록 인문과 기업 간의 상호협력 가교(架橋)를 구축해 지원해야 한다.

인문학계와 기업계의 상호협력이 단기간에 쉽게 구축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대학은 순수 기초연구에 매진하고 기업은 즉각적인 이익 창출에 몰두할지 모른다. 추격형 사회일 때에는 이런 분업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세계사가 증명하듯이 선진형 사회로 진입할 때에는 소통과 융합이 당면과제로 떠오르게 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인문학과 기업 간에 인력 양성 네트워크의 구축이 절실하다. 상호 몰이해와 불신으로는 기업과 사회가 직면한 글로벌 이슈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 글로벌 시장 지향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위해 기업은 물론 인문학도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선진형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오늘을 개혁해야 한다.

조지형 이화여대 교수 미국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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