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월드컵에서 참패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상비판을 받았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이례적으로 북한 전역에 생중계된 포르투갈전에서 0-7로 대패했으니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했을 법도 하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 지도자들은 사상비판을 통해 민심을 달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상비판은 북한 축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경영학에서 ‘성공’보다 ‘실패’가 학습에 더 효과적이라는 게 ‘정설(定說)’이다. 미국 항공사 대상의 연구 결과, 항공사고 발생 후 유사한 사고의 재발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자발적 리콜을 한 자동차 회사들도 이후 재발률이 뚝 떨어졌다. 최근에는 4663건의 궤도위성 발사 사례를 분석한 결과가 학계에 보고됐는데 성공보다는 실패가 성과 향상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런 점에서 보면 포르투갈전 대패는 북한 축구 발전에 보약이 될 수도 있었다. 마치 컬럼비아호 폭발 사고 후 미 항공우주국(NASA)이 4000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29개의 대안을 제시했던 것처럼, 북한 축구계가 제대로 원인과 대책을 모색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는 데 걸림돌이 되는 두 가지 행동이 있다. 그중 하나는 ‘부인(denial)’이다. 현실에선 명확하게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하지만 실패를 부인하면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학습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둘째로 ‘오명 씌우기(stigmatization)’나 ‘처벌’이다. 실패를 비난하거나 처벌하는 분위기에서는 개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또 책임 소재를 놓고 소모적인 싸움이 벌어진다. 특히 실패로 처벌받는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면 조직원들은 상부의 지시에만 수동적으로 응할 뿐 위험을 감수하는 창의적인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한다.
경영학 관점에서 북한의 사상비판은 실패 자산의 활용을 어렵게 한다. 다수가 모인 집회에서 잘못을 이야기하는 게 선수들에게 정신적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잘못했다는 진술은 받아낼 수 있겠지만 문제의 진짜 원인과 대안을 찾으려는 진심어린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패 위험이 높은 창의적 플레이도 위축된다. 따라서 북한 축구의 미래가 밝다고 보기 힘들다.
한국에는 사상비판과 같은 문화가 없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는 조직은 많다. 이런 조직에서 작은 실패가 생기면 구성원들은 감추기에 급급해한다. 작은 실패가 겹치면 조직의 존망을 위협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실수나 실패 내용을 보고하기 어려운 병원에서 의료사고가 훨씬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리더들은 실패를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는 실패를 무조건 봐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원인 분석과 대책 수립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라는 의미다. 실패를 부담 없이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개선책을 찾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조직의 학습 효과가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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