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의 ‘입’인 대변인들이 일제히 바뀌었다. 여야 지도부가 바뀌거나 사퇴해서다. 떠나는 대변인들은 ‘고별 브리핑’에서 한결같이 “상대를 비판할 때 괴로웠다”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나라당 조해진 전 대변인은 5일 퇴임회견에서 “‘대변인’이란 자리는 갈등을 양산하고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약 올리는 건 싫었지만 ‘대변인’이란 자리는 그렇지 않더라”고 토로했다. ‘적수’였던 민주당 노영민 우상호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존경스러울 정도로 훌륭한 분들”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민주당 노 전 대변인도 “나로 인해 상처를 입었던 모든 분들에게 너그러운 용서를 빈다”고 했다. 특히 정운찬 국무총리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거명하면서 “두 분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야당 대변인으로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한나라당 조 전 대변인에 대해서는 “역대 가장 휼륭한 대변인이었다”고 덕담했다.
민주당 우 전 대변인도 “공격 대상이 됐던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개인적으로 매우 괴로웠지만 야당 대변인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야 대변인들의 ‘고별 브리핑’은 얼핏 ‘아름다운 참회’의 현장 같다. 한때 호되게 깎아내렸던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훈훈한 화해의 현장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실 이런 풍경은 전혀 새롭지 않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변인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어 온 장면인 것이다. 도돌이표에 따라 똑같은 노래가 반복되듯이.
민주당 노 전 대변인의 전임자였던 최재성 전 대변인은 1년 6개월 전 물러나면서 “저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했고, 한나라당 조 전 대변인의 전임이었던 조윤선 전 대변인도 “최재성 대변인은 참 좋은 파트너였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변인들의 고별 브리핑을 들으면서 상당수 국민은 ‘현직일 때 잘하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현직에 있을 때 절제하면서 성숙한 말의 정치를 펼쳤다면 굳이 나중에 참회록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현직 브리핑과 고별 브리핑의 ‘언어 수준 불일치’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떠나가는 대변인에게서 참회의 브리핑 대신 “재임 중 한국 정치의 언어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감히 자부한다”는 당당한 자평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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