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일병합조약 공포(1910년 8월 29일) 100년을 앞두고 어제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간 총리는 한일병합조약에 대해 “3·1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 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反)하여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올해 5월 일본의 지식인 104명은 한국 지식인 109명과 함께 ‘병합조약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시킨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였다’고 명시하고 병합조약이 원천무효라는 공동 성명을 내놓았다. 동참 지식인들이 늘어나 최근까지 일본에서 545명, 한국에서 592명이 참여했다. 두 나라 지식인들은 이번 담화에 ‘병합조약은 원천무효’라는 표현이 포함되기를 기대했으나 실제 담화는 ‘식민지 지배가 정치적 군사적 배경하에 한국인 뜻에 반한 것이었다’는 모호한 기술에 머물렀다.
병합조약이 20세기 초 군사적 외교적 우위에 있던 일본이 강압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두 나라는 역사의 진정한 화해에 이르기 어렵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 담화를 발표하면서도 한일강제병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이번 담화 내용은 병합조약의 강제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과거보다 진전된 역사인식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담화는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했다.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발표했던 담화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한일 간 역사 문제를 획기적으로 타개할 수도 있었던 ‘강제병합 100년 담화’를 발표하면서 무라야마 담화를 기조로 해 병합조약의 강제성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는 선에 그친 것은 역사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간 총리는 조선총독부를 통해 반출된 조선왕실의궤 등 일본 정부가 소장한 한국 문화재를 인도하겠다고 제의했다. 일본 궁내청이 조선왕실의궤를 소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뒤 한국 국회와 민간단체의 반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조사를 거쳐 자세한 현황을 파악하고 불법 유출된 문화재는 우리 측에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계속된다면 사과 담화와 문화재 인도의 의미가 공허해진다. 일본은 한국 침략 과정에서 시마네 현에 멋대로 편입시킨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침략의 과오를 부인하는 역사교과서 왜곡도 시정함이 옳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올해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표기를 강화하도록 지시한 것은 역사 왜곡을 심화시키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거대 중국의 부상과 함께 재편되고 있는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긴요하다. 일본은 좀 더 넓은 시각에서 한일 간 역사 청산과 화해에 접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