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아르헨티나로 관광을 갔는데 예상보다 정말 좋아서 아예 거기서 몇 달간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선 아직도 많은 사람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듯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범죄자들이 은신처로 멕시코를 택하는 장면 때문일 수도, 아니면 1970년대 독재 군사정권의 부패 또는 초인플레에 대한 기억 때문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의 급성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바뀌고 또 바뀌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퇴보나 실패로 간주된다. 집단적이며 일관적인 경향도 강하다. 다른 사람이 하면 나도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된다. 하다못해 여자 탤런트의 얼굴마저 비슷해져 간다.
라틴아메리카는 어떠한가.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14세기부터 전해진 유럽문화를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보전하려고 노력한다. 변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빤히 보이는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동시에 융통성이 없다고 할 정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발전시켜온 훌륭한 제도를 가진 나라가 많다. 그들은 집단성의 정신적인 테두리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추구한다. 내일을 계획하기보다는 오늘의 철학과 예술을 얘기한다.
중남미는 낙후되었다는 편견도 아직 남아 있다.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서울보다 61년이나 앞서 지하철을 개통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국립대는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보사노바 탱고 볼레로 삼바 살사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기원한 리듬은 세계 음악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브라질의 경제규모는 8위, 멕시코는 세계 14위이다. 아르헨티나는 1950년부터 자체 기술로 전투기를 개발했고 브라질은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항공기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이다. 브라질은 연방대법원의 재판 및 대법관의 업무를 유튜브와 트위터로 지난해부터 중계하는 최초의 나라이기도 하다.
다수의 한국인은 중남미 사람이 가난하면서도 놀기만 좋아하고 걸맞지 않은 사회복지주의에 젖어서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한다.
끊임없는 발전에 대한 한국인의 투지가 배고픔을 해결하고 국가를 흥하게 하는 진보적인 생각이라면 중남미 사람의 허무한 듯하면서도 낭만적인 사고야말로 개인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정신적인 진보일지 모른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참으로 다종다양하다. 여기가 끝이면 바로 거기가 또 다른 시작임을 우리는 망각하면서 살고 있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간 때에 우리 앞에는 어떤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까. 미리 알 수는 없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국한되지 말고 넓고 다양한 세상을 포용하고 여러 국가와 신뢰관계를 넓히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땅덩어리가 작은 우리나라에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잘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지구상 육지의 14%를 차지하는 중남미 대륙에서는 6억 명의 인구가 유사한 언어를 구사한다. 또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자원과 전망이 밝은 거대한 시장이 있다. 어떻게 기회의 땅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제는 남미를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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