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천문학적 통일비용 대비하되 統一稅는 신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6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을 대비해 통일세(統一稅) 등 현실적인 방안도 준비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 문제를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달라고 제안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로 발전시키자는 단계적 평화통일 구상은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통일세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으면 저항이 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 대통령의 제의는 당장 통일세를 신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언질이다. 독일이 1990년 통일 후 지난 20년간 쏟아 부은 통일비용이 2조 유로(약 3000조 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도 천문학적 통일비용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 경제력이나 인구비율 등 여러 조건에서 지금의 남북한은 통일 당시 동서독보다 훨씬 열악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통일을 맞았다간 우리 경제가 무거운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동반 추락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통일이고, 어차피 부담해야 할 통일비용이라면 미리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세 신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목을 만드는 것은 기존 세금의 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통상 조세 저항이 더 크다. 목적세는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통일세를 거론하는 것이 옳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보다는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남북협력기금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고 축적해 순리적으로 통일에 대비하는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거나 부가가치세 법인세 소득세 세율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통일세 도입은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 구현도 정부의 공정한 일처리나 솔선수범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일반 국민에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말끝마다 법치를 강조하면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법을 어긴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마구 특별사면 한다면 어느 누가 공정하다고 여기겠는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도 자칫 재벌이나 대기업 때리기로 흘러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나 시장경제의 작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친(親)서민도 좋지만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은 피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재차 강조한 정치 선진화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인 대결 정치와 해묵은 지역주의를 해소하고 정치의 선진화를 이루려면 제도 개선이 물론 필요하다. 개헌도 고려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개헌은 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모든 문제는 제도보다 운영의 폐단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정부 여당이 국정의 운영, 정치의 운영에서 먼저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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