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 조사 때 사내(社內)통신망 열람을 거부한 삼성전자 직원에게 부과한 과태료를 취소하라는 법원의 항고심 결정이 나왔다. 삼성전자 직원은 공정위의 과태료 2000만 원 부과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1심 재판부는 과태료를 내도록 결정했다. 수원지법 항소부는 “(공정위) 조사관이 요구한 내부 통신망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열람은 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전산자료의 조사나 자료의 제출 요구라기보다는 영장의 대상인 수색에 가깝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다른 기업 기밀까지 들어 있는 통신망을 들여다볼 권리는 없다는 법률 해석이다. 법원이 공정위의 싹쓸이 조사방식에 제동을 건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수사기관도 체포나 압수수색 등 강제 조사를 할 때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법관의 영장을 발부받아야만 가능하다. 하물며 행정기관인 공정위가 영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내통신망 열람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민간기업 직원에게 과태료를 매기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업 활동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공정위의 조사를 받는 기업의 영업 비밀과 임직원의 사생활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
공정위는 일부 조사 대상 기업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사례를 들어 조사 권한을 계속 강화했다. 공정위는 계좌추적권 출석요구권 자료영치권 현장출입권 등 강제조사권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데도 노무현 정부 때는 강제조사권의 도입을 추진한 적이 있다. 공정위의 지나친 조사편의주의다. 공정위는 기업에 대한 규제와 권한 강화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경쟁 과정을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노선을 재차 강조하고,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화두로 제시하자 경제계가 긴장하고 있다. 검찰 국세청 공정위가 기업 손보기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팽배하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3년째인 2005년 청와대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대책회의를 열어 대기업의 책임을 강조하자 공정위는 대기업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대기업 때리기 정책의 선두에 섰으나 중소기업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권한을 남용한 공정위 직원들의 탈선만 늘어났다.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조사는 부작용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