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희]성공한 커뮤니케이터, 故앙드레 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9일 03시 00분


얼마 전 별세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향년 75세였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늘 한결같은 그의 모습은 나이를 잊게 한 것은 물론이고, 때론 성별과 인종까지 초월한 것처럼 보였다. 상징처럼 된 흰 의상과 독특한 억양의 말씨는 아무나 흉내 내곤 했지만 결코 똑같을 수 없는 그만의 문화적 자산이었다. 독창적인 스타일과 예술세계를 고집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에는 개성으로 다가왔다 서서히 문화적 아이콘으로 진화해 갔다.

한결같은 패션, 문화 아이콘으로

한결같은 모습만큼이나 패션도 줏대가 있었다. 모델은 늘 쪽 찐 머리를 한 형상이었고 그들이 입은 의상 디자인은 여성성을 내뿜으며 환상적 동양적 우아함을 추구했다. 옷을 장식하는 문양은 척 보아도 앙드레 김이었다. 변신을 거듭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한결같음으로 늘 궁금증과 새로움을 자아내는 그의 저력은 실로 놀라웠다. 경쟁력 있는 내용물(콘텐츠)을 일관성 있게 내놓는 방식은 성공한 정치인의 메시지 관리법을 연상하게 한다.

역설적이지만 삶은 죽음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빈소를 찾은 각계 인사의 면면과 표정을 보며 놀라운 저력의 비결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직업은 의상 디자이너였지만 활동 영역은 스포츠 연예 외교가를 넘나들었고, 남성이면서 여성성과 늘 함께 호흡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외국에 전파하려 고심했다. 마치 색깔과 감촉이 다른 천을 서로 모아 곱게 마름질하듯 그는 ‘서로 다름’을 잇는 데 평생을 쏟은 유능한 커뮤니케이터였다. 내용물과 일관성에 소통(communication)이 보태져, 그는 패션 분야를 뛰어넘는 문화적 상징인물이 되었다.

요즘 소통에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 필요할 때만 꺼내서 쓰는 도구처럼 소통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아쉬워서 남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 때 숙련된 전문가를 고용해 후딱 메시지를 생성하거나, 혹은 남이 나를 오해할 때 오해를 풀기 위해서 잠시 사용하는 실용품쯤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일단 일을 벌이고, 다음에 남과 소통하는 ‘선(先) 성공 후(後) 소통’ 모델을 종종 사용한다. 그러면서 궁극적인 성공은 모든 소통상의 부재를 정당화한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소통의 채널이 제한적이거나 좀 불편해도 일단 잘살고 보자는 시대에는 이 모델이 유효했을 것이다.

세상은 변했다. 사람이 바라는 소통의 모델도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성공 후 소통’ 혹은 ‘소통 없는 성공’의 후유증을 적지 않게 겪었기에 요즘 사람은 새삼 소통을 바란다. 그들의 요구는 “제발 소통 나중, 성공 먼저 하지 말고, 소통하며 성공하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 달라”는 시대적 요구이다. 이는 또 바꿔 말하면 “이제 소통 없는 성공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니, 한 차원 높은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소통을 해 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소통하며 성공’ 새 모델 보여줘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이루어낸 고 앙드레 김의 성공에서 ‘소통=성공’의 새로운 등식을 본다. 나의 실력과 철학을 남이 함께할 때 의미가 커지듯이 앙드레 김의 디자인은 다른 여러 사람, 분야와 연결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다. 소통은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곧 힘이다. 앙드레 김은 평생을 이런 앞서가는 소통의 모델을 실천하다 떠난 소통 전문가였다.

독창성과 예술적 고뇌를 동반한 분야도 그러할진대, 국민과의 소통에 거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정치 분야는 오죽할까. 소통은 성공의 장식품이 아니라 전제조건이다. 지도자라면 반드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