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군사력보다 더 중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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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지난주 기독교 단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날이 갈수록 저쪽(북한) 상황이 나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민군 합동 조사결과를 국민 30%가 믿지 않는다는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북한의 군사력이 남쪽보다 우세하다거나 김정일-김정은 세습체제가 공고(鞏固)해지고 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적화통일을 위한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이 남한 사회에 상당히 먹히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로 들린다.

‘천안함 불신’ 30%의 안보위협

황 씨의 걱정은 동아일보 특집 ‘나와 8·15’(8월 17일자 A6면)에 잘 농축돼 있다. “과거(8·15 광복 때)에 비하면 지금 남한은 완전히 지상낙원이다. 북한은 더 퇴보했다. 과거를 전혀 모르고 김정일을 찬양하는 사람까지 나오니 얼마나 속이 상하는가. (남한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나라를 빼앗기고 되찾았는지, 6·25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공산주의자가 얼마나 악독한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면서 역사와 이념 교육의 강화를 역설했다.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한 황 씨가 요즘처럼 강도 높게 안보에 대한 경종을 울린 적은 없다. 최근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김정일을 두둔한다면 통일은 고사하고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며 30%의 ‘한심한 사람들’을 꾸짖었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는 16일 한국안보문제연구소(이사장 김희상) 초청 특강에서 “정부와 군의 말을 안 믿는 30%가 40%에 육박하게 된다면 북한은 민중봉기에 의해 적화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의 중도실용 노선도 문제가 있다며 “무엇과 무엇의 중간이란 것인지 이념의 정체성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반대했다. 김정일 정권의 연장을 도와줄 뿐이라는 주장이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보내주면 1명당 얼마씩 주겠다는 ‘명분 있는 지원’이라면 별개 문제라고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연합 군사력은 월등하다. 주한미군과 유사시 증원 전력(戰力)은 북한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미리 탐지할 수 있는 정보수집 및 선제타격 능력이 그 바탕이다. 천안함 침몰이 저들의 군사력 우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군은 천안함 사건에 이어 북한이 최근 해안포 110여 발을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과 이남에 쐈을 때도 경고로 그쳤다. “다시 도발하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던 대통령의 선언은 실종되고 말았다. 북한의 거듭된 선수(先手)에 후수(後手)로 끌려다니는 바둑을 두고 있는 양상이다. 해안포 발사 때 단호한 응징 의지를 보여줬다면 선수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언제까지 북한에 끌려다니며 살 것인지 답답하다.

武力보다 위력적인 지도자의 용기

공산 베트남보다 군사력이 압도적이었던 자유 베트남이 1975년 공산화된 주요인은 공산 베트남의 통일전선 전략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심리전에 말려든 자유 베트남인들은 연일 반미(反美) 용공(容共) 시위를 벌였다. 세계 최강의 미국도 10년간의 베트남전쟁에서 발을 뺐다. 군사력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한상렬 목사 같은 북한 추종세력이 자꾸 늘어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바로잡는 데 정부와 국민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예측불허의 김정일 정권을 상대하는 데는 정치 지도자의 용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론과 반공포로 석방을 활용해 미국과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낸 것이라든가, 1962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무릅쓴 해상봉쇄작전으로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 기지 건설을 막은 것은 정치 지도자의 용기가 위력적임을 실증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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