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악질 범죄’ 수재의연금 횡령, 수사 확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1일 03시 00분


강원 인제 지역에서는 2006년 7월 집중호우로 29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이재민 1444명이 발생했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인제군청에는 전국의 기업과 개인들로부터 약 10억 원의 수재의연금이 들어왔다. 이 돈은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에 따라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송금했다가 목적에 맞게 다시 지급받아 수재민을 위해 사용했어야 맞다.

그러나 인제군청은 수재의연금 10억 원 가운데 8억 원을 군청 농협출장소에 맡겨놓고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식으로 썼다. 박삼래 전 인제군수는 수재의연금으로 두 차례에 걸쳐 2억4000여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구입해 자기 명의로 이재민에게 나눠주고 간부들에게 격려금을 줬다. 수재와 무관한 마을회관에 TV와 냉장고를 사주며 생색냈다. 군청 공무원 34명도 수재의연금과 재해구호협회에서 지원받은 재해구호기금을 회식비 등으로 흥청망청 쓴 사실이 드러나 3명이 구속되고 31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남의 불행을 내 일처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보낸 성의를 무참히 짓밟은 처사다.

재해구호기금 관리를 맡은 공무원은 수재의연금에서 1억 원을 빼내 아파트를 사는 데 썼으나 4년 동안 아무도 몰랐다. 군청 공무원들은 수재의연금 접수대장과 사용대장을 없애 버려 실제로 횡령 또는 유용한 돈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수사를 방해했다. 수재의연금 관리가 이 지경이니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군청 예산은 제대로 집행했는지 모르겠다.

군수가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공금을 함부로 쓰니 직원들도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모금된 돈을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재해구호협회에 보내자는 의견을 낸 공무원을 군수가 인사 조치했다고 한다.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수재의연금이 이렇게 사용된 걸 알고 나면 정작 재난이 생겨도 성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강원 지역에는 최근 수년 동안 대형 산불과 수재가 잇따라 성금이 답지했다. 인제군에서 벌어진 수재의연금과 재해구호기금 횡령 및 유용이 다른 지역에서는 없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경찰은 수사를 확대해 전국 공무원들에게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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