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앞으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지난주 청문회 첫날 드러난 사실만 놓고도 이게 공정한 사회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은 노후 대비용으로 2006년 쪽방촌 투기를 했다.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초강경 대책 마련에 부산했던 바로 그때, 평생 공무원연금을 받을 고위공직자 부인이 투기에 나선 거다. 2주 전엔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가 2006년 경기 용인의 대형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경축사대로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공정한 사회라면 두 사람은 동반 탈락해야 할 판이다.
이참에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 허용기준을 만들자는 얘기가 한나라당에서 나온다.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가 없었으면 모르되 이건 법치에 대한 모독이다. 차라리 정부가 즉각 위장전입 합법화 방침을 발표해 공직자도, 서민도 똑같은 법의 지배를 받게 하면 공평하다는 소리나마 들을 수 있다. 곧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사과하게 될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도 덜 민망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시장경제의 윤리성을 강조하면서 중소기업을 괴롭힌 혐의를 받는 대기업들은 찬바람을 맞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식은땀을 흘려야 할 사람들은 “이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추진했다”는 백용호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불과 한 달 전 “취임 1년 만에 139개 대기업이 5만6000여 개 하청업체와 불공정 행위를 않겠다고 협약을 맺게 했다”고 자랑한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이다.
공정거래위의 주요 기능이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이나 하도급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형업체들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 거다. 위원장들은 무엇을 했기에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에 닿은 이제 와서야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강조하는지 딱하다. 대통령 대선공약마저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사람은 거듭 신임받고 경제위기 속에서 성장을 이룬 대기업들은 진땀나는 상황, 이 또한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인간에겐 지금 이 일이 공정한지 아닌지 금방 파악하는 ‘공정 본능’이 있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거래하는 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공정한 사람이 늘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번영한다는 연구도 있다. 더 중요한 건 공정 본능 속엔 ‘벌주기 본능’이 있다는 사실이다. 공정치 못한 사람을 벌하지 않고선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미국 마이애미대 마이클 매컬러프 교수의 연구결과를 정부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법대로 엄정하게”를 외치기도 난감해진 정부가 민심을 사서 정권 재창출을 할 길은 친서민 정책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재정적자와 공기업 부채가 늘고 이 빚이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면, 그들에겐 너무나 불공정한 세상이 된다.
3년 전 이맘때 차기 대통령에게 “민주주의는 법치를 하는 것이고 법치를 통해 경제가 잘될 수 있도록 해달라”던 사람이 있었다. 대통령의 사돈,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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