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의 근거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했다. 조 후보자는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켜 노 전 대통령과 유족, 국민에게 송구스럽다” “더 이상 제가 발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무 근거 없이 한 말”이라고 하면 당장 자질 시비가 생길 테고, “근거가 있었다”고 말하면 후폭풍이 거셀 것 같으니 적당히 “죄송하다”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정도로 넘어가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조 후보자는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하던 올 3월 31일 경찰기동부대 지휘관 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문제의 차명계좌 발언을 했다. 그는 당초 “주간지인지 인터넷 언론기사인지를 보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으나 어제 청문회에서는 “인터넷이나 주간지 등에도 나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바로잡았다. 그러나 당시 주간지와 인터넷에서 그런 기사를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해명 자체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아무리 내부 교육용 강연이었더라도 “10만 원짜리 수표”라는 구체적인 표현까지 쓸 정도였다면 나름의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각종 정보가 몰리는 서울경찰청장이 아무 근거도 없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유무는 이제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노무현재단 측의 고소 고발로 발언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특검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조 후보자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모든 것을 아는 그대로 털어놔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태도로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할지는 몰라도 검찰 수사까지 빠져나갈 수는 없다.
이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조직은 경찰이 아니라 검찰이다. 이제 영구 보존된 관련 수사기록을 다시 꺼내 보고,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들이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는 길밖에 없다. 그것이 공정한 사건 처리이며, 국민을 위한 검찰의 자세다. 검찰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한다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발끈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오히려 진실 그 자체와 국민의 알 권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여야가 정치적 흥정으로 이 문제를 유야무야 넘겨서는 결코 안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진실은 그 누구도 덮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