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 정세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9월 초순으로 예정된 조선노동당대표자회의 ‘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라는 점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1980년 제6회 당 대회에서 김정일 총서기가 공식으로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3남 정은이 당의 요직에 취임해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할지가 주목된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3월 하순의 천안함 침몰사건을 계기로 김정일 위원장은 새로운 국가전략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지도부의 천안함 격침 결정은 여태까지 수면 아래서 계속돼 온 남북 접촉을 단절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비록 무력 보복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해도 남북 관계의 전면적인 단절, 한미 관계의 긴밀화,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의 동결 등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북한 지도부는 한미일이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 제재를 요구하는 것도, 중국이 이에 반대해 북한을 옹호하는 것도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다. 또 서해에서 한미군사연습이 실시되면 중국이 이에 반발할 것도 예상했던 일이다. 중국에 대한 의존을 전제로 한다면 북한에 미중 관계의 악화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를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데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으로 유화정책을 버리고, 버락 오바마 미 정부가 ‘전략적인 인내’를 발휘하면서 북한과의 교섭을 거절하는 한 북한에는 중국에 의존하는 길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이 바로 그 길을 선택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더욱이 신의주 등 북한 각지에서 발생한 물난리는 중국으로부터의 긴급 식량지원을 불가피하게 했다. 적어도 당분간은 핵무기 개발에 의한 억제력의 확보, 후계체제의 구축, 중국에의 경제 의존이 북한의 ‘생존 전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냉전시대의 견고한 북-중 상호원조체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에 걸친 김정일의 중국 방문으로 최신형 전투기 등 새로운 군사 원조 또는 어떤 형태의 군사적 제휴가 실현된다면 그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김정일이 이를 요구한다고 해도 중국 지도부는 그 전제로 6자회담의 복귀 및 핵개발 문제에 대한 북한의 양보를 요구할 것임에 틀림없다. 유엔 결의를 어기면서까지 핵개발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에 군사 원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의 행동으로 볼 때 중국 지도부가 북한의 불안정화를 우려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북한의 불안은 중국에 경제적 위기와 동시에 안전보장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의 대중국 의존이 확대된다고 해서 중국의 기존 대북정책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기대하는 것은 경제의 개혁개방과 이를 토대로 한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의 존속이지 남북의 체제통일이 아니다.
이 같은 중국의 대북 정책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북한의 대중국 의존 확대는 한국에도 새로운 외교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북한 체제보장을 전제로 한 핵개발의 단계적 폐기와 북한의 경제개발은 한국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라면 한미일의 결속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대국화하는 중국의 요구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해 전략적인 조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북한의 다음 지도자로 취임하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북한이 경제체제의 변혁을 시작하도록 하느냐이다. 이것이 진전될 때 비로소 국가연합 형태의 남북통일도 가능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