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학원들이 9월 대학입시 수시모집을 앞두고 수험생에게 지원 가능한 대학을 알려주는 이른바 ‘배치표’를 나눠주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발끈했다. 대입제도의 실질적 운영을 맡고 있는 대교협은 어제 “학생부와 모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토대로 한 수시 배치표가 수험생을 오도할 위험성이 크다”며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대교협이 공개적으로 학원 배치표를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교협은 배치표가 대학과 학과를 줄 세우는 형식으로 돼 있어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을 뽑는 수시전형의 취지가 퇴색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한다.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배치표는 대입 참고자료로서 일정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2011학년도 입시에서 수시 선발 인원은 전체 입학정원 가운데 60.9%에 이른다. 특히 이번 입시에서 수시전형의 종류는 1778개나 된다. 학교생활기록부, 논술, 추천서, 각종 시험성적 등 평가 기준과 반영 비율이 복잡하기 짝이 없다. 어느 대학에 지원할지 전략을 짜는 일은 고차원 방정식을 푸는 것과 다름없다. 학생부에는 학교 석차만 나오기 때문에 전국 순위 등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으면 지원전략을 세우기가 막막하다. 수험생들은 정보 부족으로 애가 탄다.
대학들은 배치표만 탓하지 말고 전형방식이 너무 복잡한 것은 아닌지, 학생들에게 입시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들이 학원을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실제 학생 선발과정에서 대학 나름의 판단기준을 분명히 해주면 배치표를 무력화할 수 있다.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낮아도 잠재력을 평가해 학생을 뽑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배치표는 자연스럽게 교육현장에서 퇴출될 것이다.
배치표가 확산된 데는 공교육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전국의 진학담당 교사 가운데 복잡한 수시전형 방식을 숙지해 학생들에게 맞춤형 진학지도를 해줄 교사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일선 고교가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적절한 진학지도를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치표를 인위적으로 금지하면 어쩔 수 없이 고액의 입시 컨설팅 비용을 지출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입시비용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입학사정관제 입시가 늘고 전형방식이 다양화하는 현 입시제도에서 배치표를 맹신하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음을 수험생들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