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정치를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78년 동안 단 두 번 우파에 정권을 내줬을 뿐 65년간을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집권해온 것이 스웨덴 정치의 전통이었다.
세계 좌파들의 열반이었고,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자국민에겐 적잖은 부담이었던 ‘스웨덴 복지모델’을 확립한 것도 사민당이다. 복지보다 일자리 선택한 스웨덴
이번엔 진짜 사랑을 만난 모양이다. 19일 실시된 총선에서 현 우파정부의 첫 재집권이 확실시된다. 성장률 4%가 넘는 경제성과
덕이 크다. 극우파 스웨덴민주당이 막판 발목을 잡을지는 몰라도 세계의 주요 매체는 한결같이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죽음’을
예고했다.
선거기간에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총리(45)의 온건당이 이끄는 우파연정(聯政)과 야당 사민당의 노선경쟁
포인트는 일자리 대(對) 복지였다. 4년 전 중도우파인 온건당이야말로 ‘새로운 노동자의 당’이라며 감세와 경쟁, 덜 관대한 복지를
공약해 승리한 레인펠트 총리는 이번에도 감세와 일자리를 들고 나왔다. 과거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이던 세수(稅收)는
그가 집권하는 동안 45%대로 내려갔고, 30만 명이 넘던 요양급여 대상자는 11만 명으로 줄었다.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전체가구의 2.5%)에 부과했던 부유세도 2007년 폐지했다.
그 결과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빠른 극복과
유럽연합(EU) 평균보다 낮은 8.5%의 실업률, EU에서 가장 적은 재정적자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주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이 더 일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우파 논리가 옳았음이 입증된 거다.
부패와 무능, 측근 중심
인사로 실권한 좌파 야당은 4년 내내 “부자 감세로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정부를 공격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같은 변화에
눈감은 채 비싼 세금, 관대한 복지로 요약되는 스웨덴 모델이 훼손돼선 안 된다며 “감세 이전에 복지!”를 외쳤다.
이로써 글로벌 위기 이후 우파가 설 자리를 잃게 됐다는 관측은 환상이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영국의 좌파신문인 가디언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처럼 영국도 좌파가 더 왼쪽으로 가면 필패”라고 25일 당대표 선거결과를 발표하는 노동당에
경고했다. 영국 보수정부는 더 센 좌파 대표가 나오면 국정 운영이 외려 편해질 거라며 야당 내부의 노선경쟁을 즐기는 것 같다고
우파신문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무능과 부패가 이념보다 무섭다
10월 3일 전당대회를 앞둔 우리의 민주당은 더 왼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민주당 비상대책위는 새 강령에서 ‘중도 개혁’이라는
용어를 빼고 진보노선을 분명히 했다. 당대표 후보들은 저마다 다양한 수식어를 붙여 진짜 진보를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서민,
저소득층, 중소기업, 사회적 약자의 친구를 자처하고 오랜 좌파적 가치였던 ‘공정’까지 선점하자 민주당은 선명야당을 위한 급좌회전을
시도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지금 5000만 한국인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닐지 모른다.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종북(從北)주의만 아니라면 원래 좌파였든 우파였든 ‘되는 정책’으로 국민을 잘살게 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살아있는 모델이다. 그는 좌파 노동자당 출신임에도 친서민 친시장 정책으로 빈곤을 줄이고 경제를 일으켜
재선됐다. 10월 3일 대선에선 노동자당의 재집권이 예상된다.
문제는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무능과 부패로
세금만 헛되이 쓰는 저질정치다. 잘난 것처럼 보이던 우파도 무능할 수 있고 도덕적이라고 알려졌던 좌파도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음을
우리는 진작 알아버렸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편을 가르던 과거 정부 주장대로 우리나라가 극심한 양극화 사회라고 믿는 것부터가
무능 아니면 무지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팩트북 2010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OECD 평균과 일치하는 0.31이다. 30개 회원국 중 17위다. 스웨덴(2위)보다는 빈부격차가 심해도 캐나다(18위)나
일본(20위)은 물론 영국(23위) 미국(27위) 멕시코(30위)보다 훨씬 덜하다. 그런데도 나라 전체가 죄 지은 양, 좌우 할 것
없이 정신적 만족감이야 주겠지만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가는 친서민 반(反)시장의 도덕적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념 아닌 능력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스웨덴 정부는 근로세 감세를, 영국 정부는 아동수당 축소를 계획 중이다. 그들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빠른 우리까지 보편적 복지 확대를 추구하다간 세금과 국가채무만 늘 공산이 크다. ‘서민 계급’ 복지도 좋지만
‘납세자 서민’이 낸 돈이 여야 공직자의 무능과 부패로 줄줄 새는 게 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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