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석이 되면 온 가족이 성묘하기 위해 몇 시간씩 산길을 걷곤 했습니다. 대중교통과 자가용이 귀하던 시절이라 먼 산길을 걸어 성묘를 가는 가족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묘를 끝내고 동네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아이들과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쏘다니며 놀았습니다. 동네 어른들도 마당 넓은 집에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누며 왁자하게 어우러져 동네 전체가 축제 분위기 같았습니다.
추석 풍속도 이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다문화가정이 많이 생기고 부모가 자식 집을 찾아가는 역귀성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도 크게 달라진 건 마을 단위의 명절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오곡백과를 거두어들이는 추석은 최대의 명절이니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생겼을 터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온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중추절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시기가 되면 오곡백과가 무르익으니 일 년 중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인간의 소망과 바람만 앞세운 게 아니라 시기상의 절묘함을 일컬은 말로도 풀립니다.
삶의 자세에서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라’ 혹은 ‘중간을 유지하며 살아라’는 의미로도 풀리기 때문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는 우리에게 인생의 정도를 제시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언제나 과다한 욕망과 과도한 결핍이 넘쳐나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삶에 실패하게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배[가운데]만 유지할 수 있다면’ 욕망도 결핍도 모두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이라는 걸 자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우리 조상은 속 깊이 깨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참뜻은 분수를 알고 한결같은 자세로 삶을 유지하라는 근원적인 가르침입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추석은 신라 풍속에서 비롯된 명절입니다. 신라 사람들은 추석이 되면 닭고기, 막걸리 등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고 실컷 취해 즐겼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은 추석에 많은 놀이를 통해 이웃과 흉허물 없이 소통하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배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자 했으나 요즘의 추석은 고속도로 정체와 해외여행과 과도한 명절 노동으로 인한 부녀자들의 불만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입니다.
성묘 문화도 화장과 납골당으로 인해 많이 바뀌었습니다. 유교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새로운 세대와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면서 추석 풍속 전체가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세태에 의해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한다 해도 오직 한 가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근원적인 삶의 자세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욕심도 없고 결핍도 없는 삶, 진정한 나를 찾고 이웃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삶.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추석의 풍요로움을 날마다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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