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사건은 고층 빌딩에 대한 방재 대책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4층에서 일어난 불이 20여분 만에 꼭대기 층으로 번질 때까지 입주민을 위한 대피 안내방송이 없었다. 불은 인화성 페인트와 필름으로 덮인 알루미늄 패널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처음 불이 난 4층에는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 소방서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소방차가 빨리 현장에 도착했고, 소방 및 군용 헬기의 구조 덕분에 사망자가 없었던 게 그나마 큰 다행이었다.
고층 아파트가 많은 홍콩에서는 20∼25층 단위로 방재설비를 갖춘 대피 층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고층 아파트에 불이 나도 위나 옆으로 번지지 않는 구조를 갖추도록 신축 때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방재 대책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의 대표건물인 아셈타워(41층)와 트레이드타워(54층)조차 대피 층을 갖추지 않고 있다.
50층 이상의 빌딩에 대피 층을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초고층 및 지하연계 복합건축물의 재난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올해 초 국회에 상정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50층 이상 건물에만 적용되는 이 법안도 30층 이상 건물까지 포함하도록 손질할 필요가 있다. 2000년 이후 30층 이상 고층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 2005년 6만여 채였던 30층 이상 아파트는 올해 26만여 채로 늘었다.
서울 용산과 인천 송도를 비롯해 100층 이상 초고층 건물 건설 계획도 10여 곳에 이른다. 초고층 빌딩은 화재 시 굴뚝 같은 구실을 해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불길과 연기가 급속하게 확산돼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 140층짜리 고층 빌딩에서 발생한 화재를 다룬 영화 ‘타워링’ 같은 재난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철저한 대비책 없이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은 기름통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