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사교육은 혼란을 먹고 자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4일 03시 00분


개인적으로 외국어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동안 많은 외고가 교육당국의 지침을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일부는 입시 부정 연루, 불법 찬조금 모금 의혹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영어듣기와 구술면접을 어렵게 출제해 초등학생 때부터 과도한 사교육비를 유발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과열이 문제이긴 했지만 외고 입시는 고교 평준화 제도로 공부에 열의가 떨어진 중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제공했다.

고교 입시 시즌이 시작됐다. 학교별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과학고가 대부분 10월부터 12월까지 원서접수 및 전형을 실시한다.

올해 고교 입시는 유례없는 혼란 양상이다. 교육당국이 입시 방식을 확 바꿨기 때문이다. 올해 가을에 치르는 입시를 봄에 변경 발표했다. 몇 년간 입시를 준비해온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중에서도 외고 입시를 둘러싼 혼선이 심한 모양이다. 올해부터 외고는 영어 내신점수와 서류, 면접만 본다. 서류는 학업계획서(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지원동기, 봉사 및 체험활동, 독서활동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500∼600자씩 기록한다.

교육당국은 서류에 영어 이외의 과목을 잘한다는 내용조차 쓰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토플 등 영어인증시험 점수나 각종 수상실적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할 수도 없다. 추천서나 학업계획서에 관련 내용을 언급만 해도 감점을 주도록 했다. 수험생의 영어 내신 성적과 잠재력만 평가해 선발하라는 것이다.

고교들은 학생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며 불만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한 외고 입시담당 교사는 “추천서와 학업계획서는 학생의 장점만 열거할 게 뻔하며 봉사활동과 독서활동을 점수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외고라고 영어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교과목 이수능력을 평가하는 최소한의 장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일부 외고에서는 면접관들이 관상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린다.

중학교 교사들과 학부모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도대체 서류에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외고 입시를 위해 몇 년간 준비해 온 내용을 쓰면 오히려 감점을 받는다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교육당국이 고교 입시, 특히 외고 입시를 이렇게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입시 과열로 인한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때문일 것이다. 외고 입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일정 부분 외고 스스로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정책은 무엇보다 학생과 학부모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학입시 변화가 최소 3년 전에 공표되는 것은 교육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 피해를 막고자 함이다.

외고 입시에서 서류전형과 면접이 중요해진다고 하니 이미 학업계획서를 첨삭 지도하는 학원이 등장했다. 자기주도 학습 전형을 실시한다고 하니 사교육을 통해 자기주도 학습법을 배우는 아이러니도 생겼다. 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입시컨설턴트들은 수험생 한 명당 수백만 원의 컨설팅비를 받는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

사교육비 경감이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 매어 못 쓴다. 오히려 사교육은 학부모의 혼란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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