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민주당 지도부 경선 때는 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뽑았다. 대표 경선에는 정세균 추미애 정대철 씨 세 사람이 나왔고
정세균 씨가 선출됐다. 패배한 추미애 정대철 씨는 최고위원도 되지 못했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에는 송영길 김민석 박주선 안희정
김진표 씨가 뽑혔다. 신진들이 적잖게 지도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 때는 달랐다. 1위 득표자가
대표, 2∼6위 득표자가 선출직 최고위원이 되는 식으로 대표와 최고위원을 같이 뽑았다.
만약 이번에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뽑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손학규 씨가 대표로 선출됐을까.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를 놓고 결선투표를 벌이는 게 통상의 대표 경선 방식이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빅3(손학규, 정동영,
정세균)는 반드시 출마했을 것이고, 당권에 관심이 있는 다른 몇몇 인사도 가세했을 것이다. 이번의 투표 결과로 본다면 1차
투표에서 손학규 씨가 1위를 했더라도 과반 득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1, 2위 득표자가 경합하는 2차 결선투표에서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손학규 씨의 대표 선출 여부를 떠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빅3 가운데 대표
경선에서 낙오한 두 사람은 최고위원 대열에도 합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을 향해 다가가는 중요한 시기에 치명적인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대신 최고위원들의 면면은 지금과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두 사람이 빠진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메우는
것은 당연하고, 미래의 자산인 신진들의 용틀임도 치열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당대회 분위기나 국민의 관심도 이번과는 딴판이었을지
모른다.
대표를 꿈꾸는 사람에게 종전 같은 방식은 위험천만하다. 이번처럼 대표와 최고위원을 함께 뽑는 것이 대표가
되면 좋고, 안 되도 최고위원은 꿰찰 수 있으니 ‘안전빵’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방식이 정동영, 정세균 씨 두 사람에게는
다행일지 모른다. 비록 대표는 못 됐지만 당무(黨務)의 최고 결정권을 가진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현실 정치에 관여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민주당에도 다행일까. 정치적 거물들이 다수 지도부에 포진하고 있으면
대외적으로 풍기는 무게감은 그럴듯하겠지만 그뿐이다. 신진들의 활동 공간은 좁아지고 정당의 역동성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빅2의 최고위원 동반 진출이 당의 신진대사를 원천봉쇄한 측면이 없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과연 호랑이와 사자가 한 우리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정동영 정세균 씨는 단순한 잠재적 대권 경쟁자가 아니라 당에서 나름의 계파와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거물들과 더불어 손학규 씨가 대표로서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당은 온전하게 굴러갈 수 있을까.
‘영원한 정치적 맞수’였던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선례를 들추지 않더라도, 서로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하고 갈등을 빚을
것이 뻔하다.
한나라당 탈당,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탈락, 총선 패배로 정치적 추락을 거듭했던 손학규 씨가
칩거 2년 3개월 만에 민주당 대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선 후보로 다가서는 데 일단은 좋은 패를 쥐었다. 하지만 그것이
보증수표가 될지, 아니면 부도 위험이 높은 어음이 될지는 지금부터 1년 3개월간 그의 당 운영 실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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