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부터 시행된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가 노동 현장에서 정착해감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거품이 끼었던 노조 전임자 수가 줄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사는 8월 말 200명이 넘던 유급 노조전임자를 21명으로 대폭 줄이고 85명의 무급 전임자를 두기로 합의했다. 노조는 회사에서 임금이 나오지 않는 무급 전임자들에게 임금을 주기 위해 조합비를 인상할 계획을 세웠다. 무급 전임자들에게 임금을 주자면 조합원들이 연간 45억 원의 조합비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자 일부 노조원은 조합비 인상 여부를 결정할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노조 홈페이지에 조합비 인상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며 전임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조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일도 안 하는 노동 귀족들을 위해 조합원들이 희생할 수 없다는 노조원들의 주장은 실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일부 기아차 노조원들은 조합비를 인상하는 대신 매년 금속노조에 내는 연맹비 35억 원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조합비가 상급단체로 흘러들어가 정치투쟁을 위한 비용으로 쓰이는 것보다는 조합원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근로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맹비를 금속노조나 민노총 같은 상급노조로 상납하지 않는다면 ‘완장’을 찬 직업 노동운동가들의 기득권이 노동 현장에서 한층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노조의 운영비용은 노조가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 원칙이자 국제적인 관행이다. 과거 강성 노조들은 파업을 통해 전임자 수를 늘리고,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전임자들은 생산현장을 떠나 상급 노동단체로 파견돼 강경 투쟁을 주도했다. 파견 노조 간부들에 대한 임금 지급이 중단되면 비정상적인 강경 투쟁도 점차 약화할 것이다. 노동계는 기업 모금을 통해 파견 노조 간부의 임금을 보전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상급 노조 간부들에게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원칙과 형평에 맞지 않는다.
모럴 해저드에 빠진 노조 간부들을 비판하는 기아차 노조원들의 목소리도 높다. 기아차 노조는 공장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맡은 병원으로부터 경비를 받아 해외 관광을 다녀온 노조 간부 3명을 면직시키고 평조합원으로 현장 복귀시키기로 했다. 노조 집행부는 당초 징계에 소극적이었으나 대의원과 평조합원들의 강력한 요구에 밀려 수용했다고 한다. 과거 노조 간부들이 마치 노조 위에 군림하는 노동 귀족인 것처럼 행세하던 비뚤어진 관행은 노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