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서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 ‘한국형 복지모델을 찾아라’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읽다보니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공동체 복지, 생산적 복지, 참여 복지, 능동적 복지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복지모델이 등장했다. 오늘의 상황은 절대적 빈곤문제에 치중했던 어제의 상황과 분명 다르다. 저출산 고령화 근로빈곤층 청년실업 다문화가족 등 새로운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복지모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복지는 투자’ 발상의 전환 필요
한국형 복지모델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은 사회복지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진국은 대개가 유럽 국가이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국가로부터 배울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혜를 모아 선진국의 제도를 잘 조합하면 좋은 모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는 기본적인 발상을 전환하는 일이다. 복지는 투자이며 복지모델은 곧 사회발전모델이라는 프레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점을 명심하지 않고 복지모델을 그리면 어떤 그림을 그리더라도 교과서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에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몫이 뚜렷했다. 경제정책은 성장을, 사회정책은 분배를 추구했다. 지금은 양자를 구분해서는 안 되고 구분할 필요도 없다. 세계화시대에 사회통합에 성공하는 나라는 살고 실패하는 나라는 죽는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동력이 사회통합이고 사회통합의 원동력이 바로 복지다.
이 점에서 경제정책이 바로 복지정책이고 복지정책이 바로 경제정책이다. 보건복지부가 복지부처라는 말은 맞지만 복지부처가 보건복지부라는 말은 틀렸다. 금융 조세 주택 건설 교통 지역개발 과학기술 등의 모든 공공정책이 복지적 정책이 되어야 한다. 유럽 국가의 사례를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복지프레임은 리더십과 파트너십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이를 추진하는 거버넌스가 부실하거나 불량하면 헛일이다. 민주적이고 투명하며 효율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복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민간을 배제하고 정부주도로 끌고 가는 일방통행적인 복지정책은 힘만 들고 국민에게 환영도 못 받는다. 정부와 민간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유엔에서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연계와 협력을 사회개발의 중요원칙으로 삼고 있다.
두 번째는 재원문제이다. 복지재원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 솔직히 말하면 정답이 없다. 논객마다 기준도 다르다. 스웨덴을 지향하는 진보적 시각도 있고 나라경제가 어려우니 천천히 가자는 보수적 시각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와 경제사정이 비슷한 나라를 고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비율을 거기다 맞추자는 절충형 주장도 있다. 그러나 OECD 회원국 중 최소한 중간은 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큰 반대는 없는 것 같다.
재원-조달방법 사회적 합의를
그러자면 사회보장비율을 지금의 두 배가량 올려야 할 터인데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쟁점으로 남는다. 여기에 대한 합의는 아직 없다. 직접세냐, 간접세냐, 일반조세냐, 목적세냐, 아니면 국가부채로 갈 것이냐. 의견이 분분하다. 재원 규모와 재원 조달 방법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청사진이 나오고 국민에게 가는 길을 보여줄 수 있다.
재원을 어떻게 쓸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까딱하면 돈만 퍼붓고 효과를 못 볼 수도 있다. 복지정책은 자선사업과는 다르다. 온정주의적인 시각으로 예산을 집행할 일은 아니다. 포퓰리즘적인 발상도 매우 위험하다. 어떤 목적으로 쓰이든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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