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의 새벽편지]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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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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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찾아왔지만 지난여름 태풍을 잊을 수 없다. 새벽에 느닷없이 창을 뒤흔들던 태풍은 순식간에 수많은 나무를 쓰러뜨렸다. 아침에 일어나 아파트 마당에 나가 보니 10여 그루의 소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대부분 30m가 넘는 소나무로 어떤 녀석은 허리가 두 동강난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나는 쓰러진 소나무를 바라보며 올 게 오고 만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파트 소나무는 한때 야생의 소나무였지만 지금은 시시때때로 영양가 높은 비료를 공급받으니 생존을 위해 스스로 뿌리를 뻗어나갈 필요가 없다. 서 있는 자리 아래가 바로 지하주차장이어서 땅속 깊이 뿌리를 뻗고 싶어도 뻗어나갈 수가 없다. 지하주차장 위에 깔린 흙더미에 얕게 뿌리를 내리고 조경사의 과보호를 받으며 의존적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사는 그들이 늘 안타깝고 위태로워 보였는데 그만 지난여름 태풍에 쓰러지고 말았다.

미국 서남부 지역엔 밑동의 지름이 10m인 데다 키가 90m 이상 똑바로 자라면서도 뿌리가 2, 3m밖에 되지 않는 레드우드라는 삼나무가 있다. 이 거목은 체구에 비해 뿌리가 연약하지만 낙뢰에 불타는 일은 있어도 태풍에 쓰러지는 일은 거의 없다. 뿌리가 땅 밑으로 깊게 뻗진 못하지만 옆으로 25m 이상 뻗어 한 뿌리에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자라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각자 한 그루 나무이지만 땅 밑에서는 한 뿌리에 연결돼 공동체를 이루며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소나무가 레드우드처럼 뿌리가 서로 연결됐다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대나무 막대로 한데 연결해 묶어놓기라도 했다면 지하주차장 위에 사는 삶이었다 하더라도 태풍에 쓰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뿌리 서로 연결해 공존하는 나무들

강진 다산초당 가는 산길엔 소나무 뿌리가 마치 혈맥처럼 길 위로 울퉁불퉁 뻗어 나온 ‘뿌리의 길’이 있다. 그들은 뿌리가 서로 뒤엉킨 채 한 몸을 이루고 있어 산길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이 밟아도 아파하거나 태풍에 쓰러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이처럼 한 그루 나무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 뿌리를 깊게 뻗어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나무의 뿌리와 한 몸이 되어 공동체를 이루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도 지상에서는 각자 한 그루의 나무로 서 있지만 그 뿌리는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그러나 우리가 이루는 공동체는 레드우드나 다산초당 가는 산길의 소나무처럼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공동체라기보다 이해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서로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공동체다. 지상에서는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땅속에서는 나와 다른 뿌리라고 해서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와 삶의 방식이 다르고 이념의 뿌리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한 몸이 되길 꺼린다면 끝내는 우리 아파트 소나무들처럼 쓰러지고 말 것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있음으로써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 일찍이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당신이 없으면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뜻이다. 인도 출신 예수회 신부 앤서니 드 멜로가 쓴 우화 중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자가 연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연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남자가 “나야, 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돌아가라, 이 집은 너와 나를 들여놓는 집이 아니다”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남자는 그곳을 떠나 광야로 가서 몇 달 동안 연인의 말을 곰곰 생각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와 문을 두드렸다. 연인이 다시 “누구냐?”고 물었다. 남자가 이번에는 “너야, 너”라고 말했다. 그러자 금방 문이 열렸다.

다름 인정할때 조화 이룰 수 있어

우리는 이렇게 나이면서도 동시에 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당신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라는 존재 속에 포함된 ‘너’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갈등과 분열의 폭을 증폭시킨다. 우리 아파트에도 하늘로 쭉 뻗은 몸매를 자랑하는 소나무만 있다면 조경의 미는 형성되지 않는다. 울타리로 심는 쥐똥나무나 회양목 같은 키 작고 볼품없는 나무와 어우러져야 조경의 미는 완성된다. 서로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서로 다르다는 점이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삶의 원동력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어쩌면 지난여름 태풍이 소나무를 쓰러뜨렸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 아파트 소나무는 다시 일어섰다. 비록 뿌리는 땅속 깊이 뻗어나갈 수 없지만 버팀목을 세우고 팽팽한 쇠줄로 몸을 한데 묶었다. 지난여름 태풍보다 더 강한 태풍이 불어오더라도 이제 서로 한 몸을 이루며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태풍은 위장된 축복이라고,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다고 서로 속삭이면서….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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