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지난주 발표됐다. 때맞춰 알려진 북한의 3대 세습 때문인지 세간의 관심이 금방 식은 것 같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산안은 매우 중요하다.
내년도 예산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친서민 복지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취약계층의 보육, 안전, 교육 및 주거와 의료 부문에 32조 원을 투입하는 등 복지 분야에 86조 원이 넘는 돈을 배정했다. 총예산 310조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고 증가율도 높다. 공정사회를 주창하는 현 정부의 국정 중심축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재작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아무리 경기가 나아졌다고 발표해도 체감경기는 싸늘하기만 하고, 성장이 개선됐다고 떠들어도 내 소득은 전혀 늘지 않는 현실에 국민은 실망한다.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기대효과를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차가운 체감경기의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중산서민층과 천문학적 실적을 올린 대기업의 뒤에 초라하게 서 있는 중소기업에 지원을 집중하는 정책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내년도 예산안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간접자본(SOC) 등 다른 부문의 예산은 줄인 반면 연구개발(R&D)과 신성장 및 차세대 수출산업에 투자를 집중한 점이다. 재정 여건이 허용하는 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복지예산이 늘어나는 만큼 다른 부문을 줄여야 하지만 현재를 위해 미래를 줄일 수 없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재정적자를 개선하겠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 위기가 도래할 경우 최후의 보루는 재정밖에 없음을 감안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조치라고 하겠다. 특히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가 불투명한 시점에서는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내년도 예산안이 포퓰리즘적이다, 혹은 보수정권의 방향과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책이란 주어진 여건에 융통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보수정권은 복지를 늘리면 안 되고 진보정권은 성장을 추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정책이 아닌 종교나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 성장을 추구하는 보수정권이 복지를 늘리고 분배를 추구하는 진보정권이 성장을 추구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내년도 예산안이 최상의 내용만을 담았다고 할 수는 없다.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늘어나면 절대 줄지 않는 복지지출은 재정운영에 부담을 준다.
인기를 먹고사는 정당과 정치인은 늘 복지 증대의 유혹을 느낀다. 실제 김대중 정부 이래 복지예산은 비약적으로 팽창했다. 복지수혜계층의 자립방안, 복지체계의 개선 등 복지예산이 과도하게 증대하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를 제시해야 한다.
재정건전성의 측면에서 정부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출범 초기 단행된 감세정책이 지출 축소와 병행되지 못하는 바람에 건전성 악화 요인을 안게 됐기 때문이다. 지출과 공공 부문의 구조조정 및 세원의 확대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재정부담 증가를 미래로 넘기지 말라는 지적도 하고 싶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 부담을 떠안고 추진했던 사업이 현재 막대한 재정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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