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베네치아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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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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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다녀왔다. 15년 전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것은 그 사이 관광객이 엄청나게 늘어난 점이었다. 베네치아의 중심 거리인 리알토 다리와 산마르코 광장을 잇는 길은 인파로 가득 차 행인들은 떠밀리다시피 움직이고 있었다. 베네치아의 명물인 곤돌라 역시 일부 구간에서 앞의 배 때문에 정체되는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관광 명소로 알려진 곳마다 1인당 3유로(약 4500원)부터 10유로(약 1만5000원) 넘게까지 꼬박꼬박 입장료를 받고 있었지만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처럼 찾아온 ‘관광 한국’ 好機

‘물의 도시’로 유명한 베네치아 구(舊)도시의 인구는 6만 명으로 서울로 치면 동(洞) 규모에 불과하다. 이 작은 곳에 이탈리아 국내외에서 하루 5만 명, 1년이면 1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대부분 관광과 관련된 직업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고 부동산 값도 급등해 99m²(약 30평) 정도의 아파트 값이 100만 유로(약 15억 원)에 이른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상을 잘 둔 덕에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다”고 부러움 반, 비아냥 반으로 말했지만 베네치아의 사례는 현대 관광산업의 괴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베네치아 이외에 로마, 피렌체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한 이탈리아는 지난해 432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여 402억 달러(약 45조 원)의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렸다.

한국의 관광산업은 세계 31위 수준으로 이탈리아와 비교대상이 아니지만 가파른 상승세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2005년 사상 처음으로 연간 6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세계 관광객 수가 2008년보다 4.3%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13.4% 증가한 781만 명을 기록했다. 올해 목표인 850만 명도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는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전망이다. 올해 목표가 이뤄진다면 외국인 방문객이 5년 사이에 40%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한 배경을 살펴보면 일본인 관광객이 전년도보다 28.4%, 중국인 관광객이 14.9% 증가한 덕분이었다.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일본인 관광객이 대거 한국을 찾았고 중국의 고소득층이 해외 관광에 시동을 건 것에 힘입은 바 컸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별 노력 없이 얻은 결과다.

문화, 역사성, 꿈과 환상이 있어야

베네치아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비싼 호텔비와 비행기 삯을 기꺼이 지불하고 찾아가도록 만드는 요소는 ‘문화, 역사, 환상’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베네치아는 세계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을 곳곳에 보유하고 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베니스 영화제, 가면축제 같은 최고 수준의 문화행사들이 펼쳐진다. 베네치아는 도시 전체가 1000년이 넘은 역사 유적이고 수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다.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이자 한때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던 남다른 특징은 관광객에게 가슴 설레는 환상과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이 관광산업의 호조를 이어가려면 베네치아가 지닌 강점들을 서둘러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문화적 측면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품목으로 한류가 있긴 하지만 언제라도 소멸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사성에서도 서울은 600년 도시임에도 내세울 만한 명소가 부족하다.

어제 폐막한 서울시 주최 디자인한마당 행사에서 건축가 김석철 씨는 ‘서울의 꿈’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서울의 문화와 역사성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김 씨는 1993년에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조성 아이디어를 냈던 사람이다. 그는 이번 ‘서울의 꿈’에서 서울 동대문 성곽 주변의 노후주택 지역에 ‘한옥(韓屋) 뉴타운’을 건설하고,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대법원을 거쳐 국립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파리의 샹젤리제 같은 대표적 문화 거리로 꾸미는 방안을 내놓았다.

중국의 국경절 연휴기간(10월 1∼7일)을 맞아 중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에 대거 몰려든 것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의 관광산업은 ‘신흥 부국(富國)’ 중국과 일본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면 새로운 국익을 창출할 여지가 많다. 여행객으로부터 달러를 그대로 받아 쥐는 관광산업의 외화가득률은 어느 산업보다 높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국제관광객 수가 2010년 10억 명에서 2020년 16억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성장산업이라고 할 만하다.

관광은 꿈과 환상을 판다. 세계인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설득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서울을 스스로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김석철 씨의 제안 같은 아이디어 경쟁을 벌이고 이를 현실화하는 작업을 지금부터라도 해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처럼의 호기를 허무하게 놓쳐 버릴 수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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