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의 우영문 채소팀장은 올해 6월 고랭지 배추가 냉해를 입었다는 소식에 가을배추 공급 물량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경력 15년의 우 팀장은 주요 채소의 재배농가와 도매상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던 중 배추 공급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확인하고 중국산 배추의 수입을 추진해 추석 직전 실행에 옮겼다. 이마트의 배추 구매 담당자는 배추 육묘장의 파종량이 감소한 사실을 올해 7월 파악하고 서둘러 대비하기 시작했다. 최근 일부 대형마트들이 값이 폭등한 일부 채소류를 할인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예측과 대비의 결과다.
배추 담당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는 농촌경제연구원의 가격 전망만 믿고 책상에 앉아 안이하게 대응하다 배추값 폭등 사태를 악화시켰다. 농촌경제연구원은 9월 ‘농업관측’에서 배추값을 ‘강세’ 정도로 전망했다. 10월에는 ‘평년보다는 높지만 9월보다는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장과 동떨어진 전망이었다. 정부가 업계 정보만 잘 활용했더라도 배추 파동이 이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일요일인 10일 뒤늦게 ‘배추 대책회의’를 연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김황식 국무총리, 임태희 대통령실장 등 당정청 수뇌부 및 관계 장관 등 14명이 참석해 G20 서울 정상회의 대책과 배추값 파동을 논의한다. 뒷북 회의에 국민의 눈총이 따갑다. 회의 참석자들이 배추 수급의 구조와 현장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제라도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 장기적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말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고 국민 세금도 상당액 투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종합대책’까지 내놓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부터 “유통구조 잘못 때문에 소비자가 배추를 산지 값보다 5∼6배 비싸게 사먹고 있다”고 폐해를 지적했지만 유통구조는 바뀐 게 없다. 장태평 전 농식품부 장관은 한동안 점퍼를 입고 일을 했지만 ‘무늬만의 현장주의’였다.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5일 관련 단체와 대책회의를 갖고 “연말까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세부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또다시 국민의 기억력을 시험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