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선택 속에서 길을 잃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8일 03시 00분


학생들이 낄낄거리며 하는 말마따나 처음 손에 받아든 스마트폰은 ‘깻잎 통조림’의 파지감(把持感)이 느껴졌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다른 물건이 떠올랐다. 솜털 보송한 중학생 시절 친구 집에서 손에 쥐어본 ‘스위스 군용칼’이었다.

갖가지 용도의 칼을 넘어 톱, 가위, 송곳, 핀셋, 돋보기…. TV 드라마 ‘맥가이버’를 들 것도 없이 머릿속은 이미 모험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느 날 예상 못한 위기에 부닥친다면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이 물건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아마도 곁에 있을) 동년배 여학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 전해주는 로망도 비슷했다. 유튜브 동영상에 나온 것처럼 팝콘을 튀길 수는 없겠지만 전화, TV, 카메라, 수첩, 계산기, 녹음기…. 온갖 고래(古來)와 첨단의 장비로 무장한 채 사무실 하나를 주머니에 옮겨주겠다고 이 작은 물건은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스위스칼은 나사를 풀어 새로운 장비를 추가할 수 없지만 스마트폰이라면 다르다. 위기가 생기면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을 신속히 내려받고 정보를 검색해 난관을 헤쳐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21세기의 스위스 군용칼을 거머쥐고 거리로 나서는 우리는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를 넘어 ‘디지털 전사(戰士)’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한 만큼 손 안에 쥔 것일까. 공짜부터 0.99달러, 4.99달러짜리 앱을 성이 찰 때까지 내려받은 뒤에도 새 종복(從僕)은 포만을 모른다. 가장 뛰어나다는 지하철 안내 앱, 가장 다양한 채널이 나온다는 라디오 수신 앱을 내려받고 이전 것을 지운다. ‘팟캐스트(자동으로 새 에피소드를 띄워주는 주문형 방송)’의 신세계에 눈을 뜨고 이것저것 구독 신청을 했지만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을 ‘고속주행’으로 볼 시간조차 낼 수 없다.

수많은 앱이 ‘찾기’라는 이름을 단 것은 그만큼 상징적이다. 수많은 정보의 바닷속에서 내게 맞는 방송 프로그램을, 책을, 음식점을 찾아주겠다고 아우성친다. 가장 인기가 많은 무료 앱 중 하나가 다양한 요구와 용도에 맞춤한 앱을 찾아주는 ‘앱 찾아주기’ 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 궁핍한 시대에 시가 무슨 소용인가.” 18세기 독일 문인 횔덜린은 동시대 문화에 가해지는 위협을 ‘궁핍’에서 찾았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의 문화에 가해지는 중대한 위협 중 하나는 ‘궁핍’이 아니라 ‘과잉’에서, 선택의 자유와 선택권의 과잉에서 나온다.

“무엇이 문제냐, 각자의 개성에 딱 맞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는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대한 정보량 속에서 길 찾기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찾아낸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인이 만 가지 취향을 추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 속에서 카페와 트위터로 소통한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는 이내 대화가 막힌다.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주제라면 이미 깊이 있는 취향은 추구하기 힘들어진다.

마음에 딱 맞는 앱처럼 손쉬운 해결책을 찾으려는 생각은 없다. 라디오가, TV가,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그랬듯 ‘이 문명의 이기가 문명의 쇠퇴를 불러올 것이다’라는 단언은 지나친 단순화나 센세이셔널리즘으로 판명되리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지 모른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친구는 그 칼에 달린 기구 중 몇 가지나 써봤을까. 참, 정작 칼 자체는 썩 쓸 만하지 않다고 불평하던 것은 기억난다.

유윤종 문화부 차장 gustav@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