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소상공인 보호대책, 한국은 ‘요란’ 유럽은 ‘실속’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8일 03시 00분


“국회의원들 만나서 탄원하는 것 말고 이제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연구 좀 하고 법을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이건 성의가 없었던 것 아닌가요.”

7일 통화한 소상공인단체 연합회 관계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대형 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이 동네 골목 상권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속 묶여 있는 데 대한 탄식이었다.

두 법안은 반 년 전에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아직까지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6일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 정식 서명한 유럽연합(EU) 측이 이 법을 ‘외국계 유통업체에 대한 차별’이라고 문제 삼을 경우 어렵게 체결한 한-EU FTA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소상공인 업종 대표들은 “유럽 여러 나라도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자국의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는 각종 규제를 갖고 있고, 강도도 한국보다 훨씬 더 세다”고 주장한다. 다만 다른 나라들이 트집 잡지 못하도록 정부와 의회, 지방자치단체가 제도를 교묘하게 잘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면적 280㎡ 이상 대형점포는 일요일에는 총 6시간 내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대기업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주변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 독일에서는 경쟁제한방지법에서 대형 유통체인점이 일정 기간 매입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도시계획 규제를 통해 대형 유통업체는 주요 지역과 기타 특수 지역에만 입점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 국회는 대기업슈퍼마켓이 이슈가 되자 국제 통상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10여 건의 ‘상생 법안’을 우르르 내놓았다. 이름부터 법의 목적과 수단을 대내외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셈이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외교통상부가 “그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난다”며 공개 비판하고 나서는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한국이 역사적으로 수많은 조약 경험을 가진 서유럽 국가들의 수준을 단숨에 따라가기는 무리겠지만 이번 법안 처리 과정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선진국들처럼 실속을 챙기면서도 자유무역시대 해외 파트너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세련된 방법을 강구할 수는 없었는지….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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