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시험과 뽑기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2일 03시 00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해외 법률구조활동 보고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외국 로스쿨과의 제휴로 일선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실제적으로 법적 도움을 주는 활동에 참여해 보고 그 경험을 나누는 발표회였는데 내용이 신선하고 유익했다. 그런 활동은 로스쿨 학생에게 퍽 좋은 기회라고 여겼지만 모든 학생이 다 참가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담당 교수에게 참가자를 어떻게 선발했느냐고 물었다. 교수는 시험으로 선발하면 학생들의 실력이 비슷하기에 변별력도 적고, 일부에서는 불만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추첨으로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요즘 학생들이 시험으로 선발하는 방식에는 불만이 있으나 추첨으로 정하면 불만이 없다는 얘기가 참 신기하였다.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골프 게임 내기를 할 때 점수에 따라 이기고 지는 식으로 정했지만 요즈음은 점수가 아니라 뽑기가 대세라고 한다. 그래서 골프도 연습장 가서 실력을 연마하기보다는 제비 뽑는 연습을 더 열심히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시험보단 뽑기에 열심인 사회

요즘 사회 일각에서 고시제도의 여러 폐해가 지적되면서 장기적으로 행정고시 폐지가 계획되고 있다 한다. 고시가 마치 특권층을 양산하고 공정한 사회의 틀을 깬다는 식의 논리로 폄하되면서 고시로 공직자를 선발하는 것의 각종 문제점이 지적된다. 사실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시험을 제외하고는 행정이나 외무 분야에서는 이미 개방형 직제 등의 내용으로 고시 외 다른 방법에 의한 임용의 문이 열려 있었고 그 문은 점점 확대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경우는 시험과 달리 전문지식이나 경험 또는 경력 등의 장점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인데 때론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장관 등 고위직 자제들의 특채에 관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필자의 학창시절에는 과거제도의 장점이 인재의 고른 등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양반 자제만이 출세하는 현실을 지양하고 빈부나 신분 격차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통하여 고루 선발될 수 있는 기회균등을 위하여 과거제도가 실시되었다고 했다. 또 현실적으로도 소위 힘없는 집안에서 자신이 노력한 결과 시험을 통하여 공무원이나 고위직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전에는 과거였고 근래에는 고시였다. 그렇다면 과연 실력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시험 또는 고시는 우리 사회의 공정을 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나마 공정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기준일까.

최근 젊은층 사이에 열풍 현상까지 빚는 TV 프로그램으로 슈퍼스타K라는 신인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다. 100만 명이 넘는 응시자에서 출발하여 단 1명을 선발하는 치열한 과정을 보여준다. 노래 잘하는 사람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니까 당연히 매회 다른 조건에 따른 노래 부르기로 대결을 하고 심사위원들이 냉정하게 점수를 매긴다.

재미있는 점은 TV를 통하여 출연자들은 노래 실력을 적나라하게 검증당하고 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마저 시청자들에게 가차 없이 평가받는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대국민 문자투표라는 방식의 시청자 투표가 심사위원들의 점수를 넘어 당락을 좌우한다. 가끔 실력이 월등한 출연자가 시청자들의 반대몰표로 탈락했다는 원성이 일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은 그러니까 시청자가 투표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매회 재미와 뜨거운 관심과 함께 때론 감동을 선사한다.

이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출연자들의 노래 대결도 볼만하지만 만천하에 훤히 드러나는 평가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웠다. 마치 정치인들의 유세와 토론회, 투표 혹은 인사청문회를 연상케 해 그와 대비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보며 사실 정치도 행정도 사법도 그 분야의 치열한 경쟁과 공정한 판단으로 어필할 때 그처럼 뜨겁게 국민을 감동시킬 수도 있을 텐데 왜 늘 여기엔 시니컬한 양비론만 남을까 아쉬움이 크다.

공직자들 능력 냉정히 평가해야

물론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실력이다. 가수가 되려면, 정치인이 되려면, 장관이 되려면 일단 그 분야에서 요구하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대국민 문자투표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또한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위장 전입이, 군대 면제가, 부동산 투기가 지적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노래 잘하는 이를 선발하는 데서도 그와 같이 치열한 실력 검증을 거치도록 하는데 한 국가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인사들이 정작 필요한 정치 실력, 행정 실력 그리고 리더십의 경쟁, 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냉정한 평가, 그리고 그 심사위원들의 심사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는 생략한 채 대국민 문자투표에만 온통 치중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대비되었다.

김영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yhk888@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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