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색이 너무 하얗다고 표백제를 넣은 것 아니냐는 괴담은 정말 황당하더군요. 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국내 제분공장들이 원맥(가공 전 상태의 밀)을 곱게 빻을 수 있어서 빛 반사율이 높은 것뿐인데….”
8일 경남 양산에 위치한 CJ제일제당㈜ 양산공장 관계자들은 인터넷에서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밀가루와 관련한 괴담들에 어이없어했다. 한국제분협회 주관으로 이뤄진 이날 밀가루 공장 공개 행사는 이례적인 일이다. 협회 측은 “밀가루 소비 촉진 목적도 있지만 실제로는 인터넷 등에서 떠도는 밀가루 안전성에 관한 루머가 도를 넘어서 창립 55년 만에 협회 차원에서 회원사 공장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밀가루 괴담은 꾸준하고 다양하게 인터넷에 등장한다. 이 공장 신대섭 공장장은 “원맥의 선적, 하역 과정에 분진이 날리는 사진을 두고 ‘운송 과정에서 부패나 변질을 막으려고 방부제나 살충제를 넣는 모습’이라는 주장이 인터넷 등에서 떠돌아 소비자를 불안케 한다”고 했다. 신 공장장에 따르면 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수분 함량이 낮고, 주요 수입국인 미국산과 호주산의 경우 배로 운송해도 운송 기간이 최대 15일 안팎에 불과해 부패나 변질 우려가 낮다. 따라서 방부제나 살충제를 넣을 필요가 없는 대표적 곡물이다. 만약 방부제나 농약을 섞은 원맥이 들어와도 국내 검역 당국이 이를 사용하도록 통과시킬 리 없다. 하지만 컴퓨터 뒤에 숨어서 루머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이들에겐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자신들의 믿음 체계를 방해하는 요소로 치부돼 쉽게 무시된다.
국내에서 가공하기 위해 미국, 호주 등지에서 수입하는 원맥이 ‘현지인은 먹지도 않고 동물 사료로 사용하는 저급 밀’이라는 루머도 있다. 하지만 국내 제분업계가 들여오는 수입 원맥은 수입량의 대부분(95%)을 차지하는 미국산, 호주산 모두 1등급 제품이다. 수입량의 5%에 불과한 캐나다산 정도만이 1등급 생산량이 적어 2등급 제품을 들여올 뿐이다. 먹을거리에 깐깐하기로 소문난 일본보다도 등급이 높은 원맥을 수입할뿐더러 이렇게 만든 제품은 수출까지 하고 있다.
최근 경찰 수사에서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인기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의혹 제기에서 보듯 인터넷 등에서 무차별적으로 생산, 유포되는 루머나 괴담은 개인은 물론 특정 산업에도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런 피해는 우리 사회가 짊어질 사회적 비용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우리는 2년 전에도 ‘미국산 쇠고기 괴담’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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