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감원 나가신다, 자리 만들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3일 03시 00분


2년 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감독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줬다. 올해 7월 제주은행에 종합검사를 나간 금융감독원 직원 14명 가운데 7명이 피검기관인 제주은행의 감사와 부행장으로부터 저녁식사 대접을 받았다. 금감원의 검사반장 등 3명은 2차로 양주 접대를 받았다. 제주은행과 같은 계열인 신한은행의 원우종 상근감사가 주선한 자리였다. 원 씨는 금감원 국장 출신이다. 금감원 퇴직 간부가 ‘낙하산’으로 금융계에 내려가 금감원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행태를 보여준 작은 사례다. 이 일로 검사반장은 견책, 직원 2명은 주의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은행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저축은행의 감사 자리에 앉은 금감원 퇴직 간부는 인맥과 친분을 활용해 금감원의 동향을 미리 탐지하고 어려운 일을 피해가거나 쉽게 풀도록 한다. 이런 관행은 금융 선진화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에서 더 깊어졌다. 금감원 현직 간부들은 “금감원 출신이 내려가 있는 금융회사와는 이야기가 금세 통하니까 양쪽 다 일하기가 쉽다”고 말할 정도다. 금감원이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차명계좌를 적극 조사하지 않은 것도 이런 관행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난 5년간 금감원 2급 이상 고위직 출신 88명 중 재취업 업체를 밝히지 않은 4명을 제외한 84명 전원이 금융기관에 재취업한 것으로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그중 감사로 간 전직 간부가 82명이다. 지난 1년간 퇴직한 간부 38명의 재취업에는 평균 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갈 자리를 미리 마련해 놓고 나갔기 때문이다. 주식 상장이라는 대사(大事)를 앞둔 생명보험 업계는 금감원 출신을 줄줄이 모셔 갔다.

금감원 일부 직원은 자신이 재취업할 가능성이 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는 무디게 하고, 그 대신 재취업 가능성이 적은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과잉검사를 한다는 말도 금융계 일각에서 나돈다. 금감원에서 상사가 부하 눈치를 보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상사가 퇴직 후 재취업한 금융기관을 부하 직원이 훗날 감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국감 답변에서 ‘전문가 활용의 이점’을 거론하며 퇴직자 재취업을 옹호했다. 그런 논리라면 외교통상부가 ‘장관 딸 활용의 이점’을 주장할 수 있겠다. 김 원장은 ‘전문성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 보인다. 인사를 매개로 감독 당국과 업계가 지나치게 밀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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