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내가 뿌리고 내가 거두는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6일 03시 00분


미도[迷途]-마장후이(馬江輝) 그림 제공 포털아트
미도[迷途]-마장후이(馬江輝) 그림 제공 포털아트
우리 사회에는 ‘카더라 통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카더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누가 ∼라고 하더라’는 간접 전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근거나 정보가 부족한 추측이나 억측성 이야기가 많지만 카더라 통신망을 타기 시작하면 일파만파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갑니다.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했다고? 그럼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화려한 스펙을 만들 수 있겠어. 난 처음부터 믿지 않았지.

유언비어, 억측, 괴담, X파일 같은 것은 카더라 통신과 함께 가공할 만한 전파력과 파괴력을 지닙니다. 하지만 거기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신빙성 여부와 상관없이 교묘한 이중적 쾌감을 느낍니다. 특정인을 손가락질하며 희희낙락하는 동안 뒤틀린 가학성과 일그러진 보상심리가 야합하여 악의적인 쾌감을 맛보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자기 고발인지를 당사자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특정인을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이 지적하는 대상을 욕하고 비하하고 폄훼하며 문제를 끝없이 부풀리고 싶어 합니다. 자기 기만과 자기 위안을 동시에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손가락질하는 문제는 자기 내면에 숨어 있는 잠재적 문제입니다. 그것 때문에 손가락질을 하며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다, 하는 식으로 타인을 지시합니다. 자신이 손가락질하는 문제가 바로 자기 문제라는 걸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속에 은폐된 문제를 타인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이중 인격적 행위, 그것이 바로 손가락질의 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강요하는 게 아니고 강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것이 신뢰를 지닌 관계의 자연스러움입니다. 거짓은 불신의 양식이 되지만 진실이 진실로 통하지 않는 사회는 정신의 뿌리가 죽은 사회입니다. 거기에는 사유도 없고 모색도 없고 오직 폭력적 강변만 난무합니다.

악의적인 말과 손가락질을 앞세우는 사람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진실을 주고받는 대신 사이버의 장막 뒤에 숨어 무차별하고 무제한적인 말로 진실을 학살하려 합니다. 문명의 이기인 인터넷이 진리와 진실을 주고받는 인간 교류의 장이 아니라 악마적인 사유와 악의적인 언어의 소굴로 전락한다면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은 음험한 저주의 공간으로 전락할 게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사람이 말로 짓는 네 가지 업(業)이 있다고 합니다. 남을 속이는 거짓말(妄語), 남에게 퍼붓는 욕지거리(惡語), 남을 이간시키는 서로 다른 말(兩舌), 겉과 속이 다른 발림말(奇語). 생각해 보면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한 말은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에서 우러납니다. 세상에 양식이 되는 말, 세상에 쓰임이 되는 말, 세상에 거름이 되는 말, 세상에 빛이 되는 말, 세상에 소금이 되는 말…. 내가 뿌린 말의 열매를 모두 내가 거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람은 말을 경작하는 농부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좋은 말의 씨앗을 많이 뿌려 풍요로운 인생을 경작해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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