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여름휴가가 끝난 9월 초부터 이달 19일까지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여섯 번의 전국 규모 파업이 있었다. 파업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참가자가 늘어나고 과격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연금개혁 필요성과 현실의 괴리
연금개혁의 핵심내용은 간단한 만큼 타당하다. 아니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대 간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프랑스의 연금제도, 즉 현재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인구가 낸 기금으로 퇴임한 세대의 연금을 보장하는 제도하에서 인구의 고령화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연금 적자에 대처하면서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 개혁안의 뼈대는 퇴직연령을 2년 연장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프랑스인의 절대 다수(여론의 71%가 파업 지지)가 당연한 개혁에 맞설까.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연금개혁이 공론화되고 정치적 쟁점이 되기 시작한 지난 6개월 동안 프랑스 정부는 개혁의 절박성과 당위성만 강조한 채 노조와의 협상을 사실상 거부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노조를 업지 않고도 개혁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친정부적 온건 노조마저도 소외감을 느껴 파업에 가담했다. 온건파인 프랑스기독노조(CFTC) 위원장인 자크 부아쟁은 “처음부터 협상이란 명분뿐이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털어놓았다.
둘째, 개혁 논의의 시작단계부터 정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는 스캔들에 발목 잡혔다. 개혁을 주도하는 노동부 장관인 에리크 뵈르트가 부인의 채용 및 정치자금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 휘둘렸다. 처음엔 신중한 입장이던 노조 대표들이 그를 정부 측 협상의 주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함으로써 개혁을 밀어붙이고자 하는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여론도 이런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 착오이다. 연금법 개혁의 시도는 전 정권에서도 몇 차례 있었지만 여론의 저항에 부딪혀 모두가 실패한, 대단히 민감하고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이다. 그럼에도 사르코지 대통령은 연금개혁을 시작부터 의도적으로 정치쟁점화했다.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개혁을 단행하는 용기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원했으며 이를 통해 2012년 재선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최측근 중 한 사람인 노동부 장관의 스캔들이 몇 주간에 걸쳐 여론의 도마에 올랐을 때도 경질하지 않았다. 노동부 장관의 경질은 연금개혁의 후퇴 내지는 포기로 이해되고, 이는 임기 5년 동안 최대의 개혁으로 인식된 연금개혁이 빛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2년도 남지 않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밀어붙이기식 개혁 국민저항 불러
이런 상황에서 여권은 더욱 경직화되었고 소통과 합의를 간과한 밀어붙이기식으로 일관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지적처럼 ‘길거리의 함정’에 빠졌으며 여론을 격화시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인터넷에는 “데모 참가자가 더는 이 개혁에만 반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는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여론의 절대 다수가 필요성을 인정하는 개혁, 그리고 고령화와 더불어 피할 수 없는 개혁인 연금개혁. 산술적 공식이란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산술적 공식과 민심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에 정치적 역할의 묘미가 있다. 시간이 걸린다 해도 소통을 통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 없이 정치가 지나치게 효율과 결과에만 집착할 때 어떤 사회적 정치적 위기가 도래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현 사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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