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경미]교육과정 성공, 교사에게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7일 03시 00분


교육과정이라는 용어가 일반인에게 친숙해진 것은 제7차 교육과정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부터인 것 같다. 교육과정은 총론과 각론으로 구성되는데 총론은 학년별로 어떤 과목을 몇 시간씩 가르칠지를 지정하고, 과목별 각론은 어떤 내용을 어느 수준으로 가르칠지를 명시한다. 1997년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이 광복 이후 7번째로 개정된 것이니 개정 주기가 매우 짧은 편이다.

제7차 교육과정 이후는 개정 연도에 따라 명명한다. 2007 개정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은 2009년부터 적용됐고, 그 와중에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이 공표돼 2011년부터 적용된다. 2009 개정 총론에 기초하여 교과별 각론이 개발돼 2011년 발표되고 2014년부터 그에 따른 교과서를 사용할 예정이다. 웬만한 사람은 그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교육과정은 복잡한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게다가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2009 개정 총론과 2007 개정 각론이 어색하게 짝을 이루는 기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여러 과목 중에서도 특히 혼란스러운 변화를 겪은 것이 과학 교육과정이다. 2007 개정 고등학교 과학 교육과정은 교과서가 집필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효화되고 이를 대체한 2009 개정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발표됐다. 새 과학 교육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뉜 고등학교 1학년 내용을 과학적 소양 중심의 융합과학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기존 교육과정이 통합을 시도했지만 미온적인 수준에 그친 데 반해 2009 개정 교육과정은 통섭의 시대에 맞게 우주와 생명, 과학과 문명이라는 큰 주제 아래 다양한 내용을 녹여내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과학이 마치 영화 예고편과 같이 현대과학의 전모를 파노라마처럼 엮어내 학생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다음 단계의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1, 2 과목으로 자연스럽게 접목시킨다는 아이디어는 훌륭하다.

집필자도 이해 못하는 통합과학

그런데 문제는 새 교육과정이 과학 개념의 위계를 지나치게 무시했고, 현재 교과서 집필 저자들조차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난색을 표한다는 점이다. 교육과 관련된 이념이나 이론은 현실과 유리된 채 저 높은 곳에 떠 있을 때는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현실로 내려오는 순간 변질되고 초라해지는 경우가 많다. 현실과 부정합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는 과학 교육과정 역시 그런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교육의 실제는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최전선의 수업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교사를 움직이지 않고는 어떠한 개혁도 가능하지 않다. 이를 입증한 예가 1960년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친 새 수학(New Math) 운동이다.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성공으로 경각심을 갖게 된 미국은 교육과정에 현대수학의 내용을 대거 포함시키고 탐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혁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를 수업에서 실행할 교사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고, 적절한 교사 연수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개선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 ‘조니는 왜 덧셈을 못하나(Why Johnny can't add)’라는 책은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새 수학의 관점에서는 왜 3+4=4+3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 합이 7로 같기 때문이라고 답해서는 안 된다. 덧셈의 교환법칙으로 인해 좌변과 우변이 같다고 답해야 한다. 이런 식의 수학적 엄밀성을 따지다 보니 학생들은 현대수학의 고상한 내용을 이해하기는커녕 기초 연산능력마저 저하되어 ‘기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Basics)’ 운동이 나타나게 됐다.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말처럼 예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새 수학 운동’ 실패 전철 피해야

현재 교사들은 물리교육과, 화학교육과 등에서 분과적으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통합과학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핵심 교사를 선발해 전달 연수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교사들이 통합과학의 아이디어를 수업에서 구현해내려면 좀 더 체계적인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10년 전 지나간 새 수학 운동의 데자뷔(기시감·旣視感)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교육과정은 시대와 상황의 변화와 학문의 발전에 따라 바뀔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되돌아보면 필연성이 없이 단지 개정을 위한 개정인 사례도 많았다. 교육과정은 학교교육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교과서도 새로 집필해야 하고 학사 운영과 대학수학능력시험도 달라지는 큰 변화를 수반한다. 교육과정 개정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변화를 위한 경제적 정신적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보고 교육과정 개정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박경미 객원논설위원·홍익대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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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0-10-27 22:59:01

    이제 크는 인물들에게 내 지적, 물적 재산 깨부수기 아이디어를 주면 나는 심한 반발을 한다. 그러니까 그가 물러나야하는 이유가 된다. 뭔가 잘못 되었다. 그래서 좋아 할 사람은 미친년 박근혜 뿐이다. 여성논객, 좋지요. 박씨가박근혜를 대리하고 있고 내 작품의 주제를 빼돌리려는 수작이다. 그러지마라. 여성논객이 좋게 커라. 미친년, 씹통을 차죽일년, 박정희는 근본부터 혐오의 대상이지만 한일 협정 하나만은 인정했었는데, 알고보니 5,16이전 민주당 정부에서 합의해 놓은 것을 자기가 했다고 사기쳤더라고. 뭐 하나 자기 아이디어, 실적이 없는 상놈의 인간, 친일파여서 박정희라야 가능했고 초기 경제성장의 자금화했다고 했는데, 미국의 간절한 중재로 민주당이 성서시킨것이더라고, 개 백정. 동북아 방어를 위해.

  • 2010-10-27 09:15:35

    새 수학의 관점에서는 왜 3+4=4+3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 합이 7로 같기 때문이라고 답해서는 안 된다. 덧셈의 교환법칙으로 인해 좌변과 우변이 같다고 답해야 한다. 그러나 =(기호사용)이 어떻게 좌변과 우변이 같은 교환법칙만 있나? 인수분해하면 딸랑 = 상징기호만 남고, 좌표에 옆으로 그려보면 길이가 같고 좌표에 위로 쌓아보면 높이가 같지않나? 고로 일편단심으로 같다는 의미로 유용하게 사용하면 될 법칙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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