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오바마가 알려주는 야당 필승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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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3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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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밤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 우세 주) 남자들은 얼굴이 레드가 될 것이다. 포르노를 보느라고.”

11·2 미국 중간선거의 야당(공화당) 승리를 예상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기사의 한 토막이다. 선거든 싸움이든, 승부에서 이긴 남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 치솟기 때문에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부터 접속한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나왔다는 거다.

한국에선 정권교체 여론 62%


선거는 시작도 안 했지만 세계는 민주당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패배를 앞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심경을 묻는 인터뷰를 지난달 일찌감치 실었다. 중간선거라는 게 여당 견제심리에 따라 집권당이 패하게 돼 있고, 경제가 나쁘면 더한 법이라고 보면 간단하긴 하다. 유럽에서 우파가 득세했듯이 ‘작은 정부’를 좋아하는 미국인의 보수 성향이 돌아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불과 2년 전, 참신하고 지적(知的)인 대통령의 탄생에 열광했던 미국이 차갑게 돌아선 모습은 변심한 애인을 보는 것처럼 섬뜩하다. “오바마는 2012년 대선에서 져야 마땅하다”는 유권자가 51%나 된다. 우파는 오바마가 너무 좌로 가서 이 꼴이 됐다고, 좌파는 그가 좌파정책을 똑바로 못해서라고 협공이다.

이념을 떠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를 물려받았던 현실만 놓고 본다면 오바마는 억울할지 모른다. 친(親)시장 잡지인 이코노미스트조차 “경기부양책과 구제금융 등 오바마 경제정책은 명백한 성공”이라고 평했다. 당장 일자리가 늘지 않아 문제지, 공황은 막았다는 점에서다.

오바마 자신은 “정책에 신경 쓰느라 정치엔 소홀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도 6·2지방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과 대통령한테서 비슷한 소리를 들은 바 있다. 일은 잘했는데 소통을 잘못했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실패한 정치인이 하는 소리다. ‘한나라당이 재집권했으면 좋겠느냐’는 한국정책과학연구원 조사에서 ‘바뀌는 게 좋다’가 61.6%나 됐다. 50%에 가까운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허상일 수 있다. 오바마도 지지도가 그 정도는 됐고 코미디채널에 출연할 만큼 소통에도 애썼다.

경제가 불같이 일어나 내 일자리가 생기고 내 봉급이 오르며 내 재산도 늘지 않는 한,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쉬울 리 없다. 반면 안 되게 하는 일은 쉽다. 사람에겐 상황이 나쁘면 출구를 찾는 ‘액션 바이어스’가 있어 변화를 외치는 야당 후보를 찍을 공산이 크다. “나쁠수록 좋다”는 레닌의 명언은 당 이념과 상관없이 유효하다. 오바마의 패배가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야당의 대선 필승법칙이 여기 숨어 있다. 나라가 잘되는 건 어떻게든 막는 것이다!

4대강 실패에 민주당 목숨 거나


행동수칙 첫째는 발목잡기와 뒤집기다. 한국 제1야당 민주당이 집권 때 미국과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FTA)에 사실상 반대하는 것도 이 ‘악마의 법칙’에 대입해 보면 이해된다. 미국 시장이 활짝 열려 우리 경제가 탄력을 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미 공화당도 집권 시절 입안한 경기부양책을 대통령이 바뀌자 하원 전체가, 상원에선 세 명 빼고 몽땅 반대했다.

민주당이 4대강 사업의 발목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사업이 완성돼 국민 지지를 받으면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이 어려울 테니까 반대하는 것”이라고 명쾌히 설명했다. 민주당 주장대로 4대강 사업이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면 내년 완공 즉시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총선이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필패할 텐데 바보가 아닌 이상 정부가 그런 일을 하겠느냐는 거다.

둘째 수칙은 거짓말과 왜곡이다. 역시 친시장 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공화당은 환자를 그냥 뒀으면 지금쯤 회복됐을 거라고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을 정도다. 오바마가 중산층에 대해선 이미 감세를 했는데도 미국인들은 구제금융으로 기업과 금융만 잘살게 됐다고 믿는 게 한 예다.

한국의 민주당이 하도 “부자 감세 반대”를 외치기에 나도 부자들이 엄청난 감세 혜택을 누리는 줄 알았다. 실제론 부자 감세를 한 적도 없다.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에 대한 감세는 2008년에 진작 했고, 연소득 8800만 원을 초과하는 사람만 소득세율을 올해부터 35%에서 33%로 내리려 했다가 글로벌 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2012년까지 유예했는데 민주당은 교묘하게 국민을 속이는 형국이다.

1994년 다수당이 된 공화당 하원의장 뉴트 깅리치는 민주당 공격에 너무 나간 탓에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에 거꾸로 이바지했다. 우리의 민주당도 너무 나가면 정권탈환이 더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야당의 필승법칙에 진짜 나라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최강대국이므로 이러나저러나 살 수 있다. 우리는 인구 감소가 시작되는 2020년까지 선진국이 못 되면 기회가 없다. 국민이 정신 바짝 차리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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