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10월 22, 23일)’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달 20일. 서울경제신문은 이 회의의 최대 현안인 환율전쟁에 대한 한국 측 중재안을 단독 보도했다. 그 뼈대는 ‘각국의 경상수지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이내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낙종한, 언론계 속어로는 ‘물 먹은’ G20 담당 취재진은 기획재정부,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등을 상대로 사실 확인에 나섰다. G20 준비위는 즉각 보도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서울경제신문) 기사는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의장국으로서 각국이 제시한 여러 대안을 수렴하여 의견을 조율 중이며 특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단독 보도를 강력히 부인해 주는 공식 해명은 ‘물 먹은’ 기자들의 쓰린 속을 달래준다. 무시해도 되고, 면피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이 보도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경주 회의가 환율전쟁의 불길을 잡으며 성공적으로 끝난 뒤 G20 준비위의 당국자들은 하나둘씩 문제의 보도가 사실이었음을 털어놓았다. 한 고위당국자는 기자에게 “그 보도가 맞다고 인정하면 환율전쟁 중재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사실이 아닌 해명자료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다’는 G20 준비위의 해명이 오히려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공식 해명과 정반대로 의장국으로서의 특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대안 수렴 차원을 넘어 중재안을 적극 제시하고 회원국을 설득하고 있었다. G20 준비위 측은 “(거짓 해명은) 경주 장관회의와 서울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지만 ‘과연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는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떨치기 어렵다. 선진국 정부가 흔히 사용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라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않는)’ 전략을 쓸 순 없었을까.
G20 준비위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 일류선진국으로 진입하겠다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이번 거짓 해명이 ‘한국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나라’라는 부정적 인상을 국제사회에 줬다면 그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아무리 국가적 중대사의 성공을 위한 선한 목적이라고 해도, 거짓말이란 나쁜 수단은 한국이 그토록 지향하는 일류선진국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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