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서민 위한 입법 한다며 서민 돈 떼로 받은 의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8일 03시 00분


한나라당이 어제 당정청 9인 회동에서 검찰의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수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별도의 브리핑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라는 국가 대사를 앞둔 상황에서 압수수색으로 파란을 일으킨 것은 신중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명색이 여당이 정부·청와대와 수뇌부 회동에서 입법로비 수사를 거론한 것 자체가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어제 김준규 검찰총장의 사퇴와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소액다수 정치후원금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여의도 정치를 유린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폭거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검찰의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국회말살’ 규탄대회를 열겠다고 벼른다.

정치권의 검찰 비판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불법 의혹이 있다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는 게 검찰의 책무다. 일반 국민이나 기업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압수수색을 당하는데 국회의원만 초법적인 특권을 누리란 법이 없다. 여야 의원들은 서민층을 위한 입법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서민인 청원경찰들의 갹출금을 받아 챙긴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회 입법권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권에서는 ‘소액다수’ 후원금만 허용토록 한 현행 정치자금법으로는 법인·단체의 소액 분산 후원 같은 편법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하지만 돈타령만 하지 말고 돈 안 쓰는 정치를 위해 고민하는 것이 친(親)서민이 아닌가. 민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통제받지 않는 검찰권’을 제어하기 위해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수사기관에 일대 변혁을 몰고 올 공수처의 신설을 ‘화풀이’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입법기관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정치권에선 검찰이 민간인 사찰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총리실 직원에게 ‘차명폰’을 지급한 사실을 쉬쉬하다가 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이자 ‘물타기’ 용도로 청목회 수사를 무리하게 확대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엔 약하고 ‘손쉬운’ 상대에게만 과감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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