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병기]‘시련의 계절’ 자초한 금감원의 늑장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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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8일 03시 00분


최근 금융감독원은 전례 없는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신한금융 사태는 물론이고 태광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편법증여 및 C&그룹의 부당대출까지 잇단 금융권의 대형 사건들로 불거진 데는 금감원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론의 배경에는 금감원의 ‘늑장대응’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대형 사건들로 불거지기 전에 이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한이 있는 금감원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해 5월 신한은행 정기검사를 통해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정황을 포착했지만 1년 넘게 조사를 하지 않아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또 정기검사로 태광그룹이 보험계열사를 이용해 편법으로 계열사를 부당지원한 사실이나 C&그룹이 우리은행에서 부당대출을 받은 사실을 파악하고도 금감원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감원의 늑장대응이 뒷북검사와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금융권의 불만이다. 금감원이 올해 중징계를 내린 금융권 최고경영진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과 문동성 경남은행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까지 3명에 이른다. 강 전 행장은 무리한 해외 투자에 대한 손실, 문 행장은 5000억 원대의 금융사고로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정기검사를 벌일 때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가 막상 사태가 커지자 책임을 피하기 위해 중징계를 내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금감원의 해명도 일리가 있다. 강제적인 조사권이 없는 금감원으로서는 수사기관들에 비해 조사의 폭이나 깊이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감원의 검사를 받느라 매년 엄청난 공력을 쏟아 붓는 금융회사들에는 금감원의 이 같은 해명이 마뜩지 않게 들린다.

금감원의 검사는 금융회사들에는 큰 부담이다. 보통 금감원은 금융회사를 정기검사할 때 수십 명의 인력을 투입해 한 달 넘게 조사를 벌인다. 이처럼 금융회사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검사를 받고 있는데도 금감원이 사전에 금융회사들의 잘못된 경영관행이나 부당 거래를 잡아낼 수 없다면 금감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잇따라 비판이 제기되자 금감원도 불투명한 검사 관행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검사 반장이 중요한 검사 내용에 대해서는 상부에 꼭 서면보고를 하도록 의무화하고 검사 자료를 기록으로 남겨둬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부디 이번 개선방안이 시련의 계절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성 생색내기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문병기 경제부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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