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4동 구룡초등학교 강당에 이 학교 6학년 학생 215명이 모였다. 개그맨 안상태 씨가 마이크를 잡고 ‘○×’ 퀴즈를 진행했다. 맞히면 문화상품권을 준다고 하자 아이들이 앞 다퉈 손을 들었다. 한 남학생은 ○라고 했다. “친구에게는 빌려줘도 되잖아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학생은 상품권을 받지 못했다. 안 씨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프트웨어를 빌려주고 복사해서는 안 된다. 친구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네 명이 돼 불법 소프트웨어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정품이 흐르는 교실’ 현장.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가 2007년부터 초등학교들의 신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벌써 80회가 넘었다. 올해 강연을 맡은 개그맨 안 씨는 “솔직히 나도 콘텐츠를 공짜로 내려받았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강연을 하면서 변하게 됐다”고 말했다.
협회에서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는 국내 불법 소프트웨어 시장을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은 1조54억 달러(약 1120조 원)로 휴대전화 시장의 5.4배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2조717억 원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41%로 이에 따른 피해액만 약 68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IT 대기업조차 일부 소프트웨어를 복제해 쓰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아이폰이 몰고 온 스마트폰 혁명은 하드웨어만 강조하던 우리에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그러나 아직도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공짜’라는 인식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임 회사를 제외하고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드물다. 업체마다 젊은 인재들을 끌어오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정품이 흐르는 교실’에 참여한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되는 눈치였으나 놀이 같은 교육이 재미있게 진행되자 정품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6학년 안재현 군(12)은 “저작권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몰랐다. 한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김은현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부회장은 “옛날에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책 도둑이야말로 큰 도둑”이라고 했다.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제대로 평가할 때 한국이 진정한 IT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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