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의영]미국과 함께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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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0일 03시 00분


11월의 서울에는 벌써 크리스마스가 찾아온 듯하다. 거리에 나서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축하하는 홍보물과 기업 광고가 눈을 채우고, 장식 트리와 거리 공연이 축제 분위기를 띄운다. 귀가해 TV를 켜면 특집방송이 줄을 잇는다. 정상회의의 성과를 예감하는 전문가와 관계자의 논평에 자신감이 가득하다.

서울 정상회의의 역사적 의미는 좀 부풀려져도 좋다. 그동안 국제금융 질서는 19세기에 산업화를 이룩한 선진국들의 클럽 룸에서 결정되었다. 이제 20세기에 뒤늦게 산업화에 성공한 신흥국들이 그 클럽의 회원으로 초대 받고 신흥국 가운데 최초로 한국이 좌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직 역할이 입증되지 않은 G20 정상회의가 한국의 주도 아래 서울에서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한다면 이는 이명박 정부의 중대한 공로일 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갈등과 위기는 이제 끝’이라는 식의 낙관은 좌절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금융 시스템이라는 배에는 큰 구멍이 여럿 뚫려 있고 세계경제를 둘러싼 파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정상회의의 논의가 경상수지 불균형 해소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얘기가 다소 못마땅하다. 급한 병은 고혈압인데 의사가 척추 디스크를 먼저 고치겠다고 나서는 것 같아서다.

경상수지 불균형 급한 병 아니다

경상수지 불균형에 대한 경보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시정하는 절차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중대한 성과다. 또한 환율갈등의 예봉을 누그러뜨리는 좋은 전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중 간 경상수지 불균형을 해소하는 일은 그리 급박하지 않다. 만일 양국 간 수지 불균형이 발등의 불이라면 이를 끄기 위해 중국은 경기를 부양하고, 미국은 긴축정책을 펴야 한다. 이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한 경상수지 불균형을 너무 강조하면 경상수지 불균형이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미국의 엉터리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왜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버블이 형성되었고, 또 붕괴하였는가. 이는 미국의 방만한 통화정책이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도를 통해 세계로 전염됐기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고 달러를 풀면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에 달러가 밀려든다. 이때 손을 놓고 있으면 화폐가 절상돼 경제에 타격을 준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는 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 같은 속도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정책을 선택한다.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이 돈을 풀면 세계 전체의 통화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과열된 상태에서 발생하면 세계가 버블의 위험에 처한다. 만일 미국은 불경기인데 다른 국가는 경기과열 상태에 있다면 미국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다른 국가가 인플레와 버블의 위험에 빠진다. 미국이 빠른 곡을 선택하면 다른 국가도 자신의 무드와는 관계없이 빠른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다. G20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미국은 모든 것이 핑계라고 응수한다. 각국이 화폐 절상을 용인하면 이러한 전염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러 이유 때문에 힘들다. 첫째, 환율을 주요국의 통화정책에 따라 춤추게 방치한다면 환율 변동성이 너무 높아진다. 환율 변동성 증가는 무역을 감소시킨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해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둘째, 경제가 불황 상태에 있다면 절상을 용인하기 어렵다. 유럽연합(EU)이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때문에 유로의 절상을 용인하기 어렵고, 일본이 미국에 맞대응하는 이유다. 셋째, 다른 국가는 환율을 방어하는데 나만 절상을 용인하면 절상의 타격이 몇 배로 불어난다. 일본이 한국의 환율 방어를 경계하는 이유다. 넷째, 자본시장을 개방한 국가가 절상을 용인할 경우 투기적 자본 유입의 강도를 예측할 수 없어 절상의 속도를 조절할 수 없다.

화폐절상 공평하고 질서 있게

이러한 문제는 진정한 세계 화폐가 탄생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혼란과 버블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노력은 할 수 있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세계경제 회복의 관건이 되고, 민주당의 중간선거 참패로 통화정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세계가 어느 정도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절상 형태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러 국가의 화폐 절상이 공평하게 그리고 질서 있게 진행되게 하는 것이다. 어렵지만 큰 원칙에는 합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원칙에는 경기와 경상수지에 여유가 있는 국가는 상대적으로 큰 절상을 수용하고, 자본시장이 개방된 소국경제가 급격한 자본유입을 규제하는 조치를 용인하는 것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송의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경제학 eyso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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