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 개혁 실패에 영향을 미쳤던 미국의 고립주의 보호주의 국수주의가 의회에서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가로막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펴낸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에서 한미 FTA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다. 미국이
외국과의 경쟁에서 화를 내고 또 겁을 내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교훈은 대통령은
대중을 이끌어야지 여론이나 좇아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쓴 대목에선 그가 이렇게 사려 깊고 진중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였나 다시
보게 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부시가 선거에 나왔다면) 에고, 그를 찍을 뻔했다”고 꼬집었다.
▷부시는 예일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엘리트이면서도 ‘텍사스 카우보이’ 같은 대중적인 모습으로 대통령이 됐고, 집권 초에는
인기도 끌었다. 문제는 너무나 서민적인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중엔 미국 대통령다운 능력과 자질이 있는 건지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최근 회고록을 홍보하는 자리에서 부시는 “내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인 줄 알았던
사람들한테는 내가 책을 썼다는 게 충격일 것”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사실 ‘무방비로 기습공격을
당했다(blindsided)’라는 말은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한 표현이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하는
사진을 봤을 때도, 2008년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에 대해서도 부시는 그렇게 묘사했다. 그는 재임 중 가장 의미 있는 일로
‘9·11테러 이후 미국 땅에 성공한 테러가 없었다’는 사실을 꼽는다. 하지만 반대파들이 수긍할 리 없다. 대통령이 9·11테러를
예방하지 못한 건 무능의 소치라고 공격한다.
▷인기 없는 지도자들은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는 말을 종종
애용한다. 부시 역시 자신의 이라크 침공 같은 정치적 판단과 정책이 여전히 옳은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도 퇴임 당시 30%대였던
지지율이 지난달엔 49%까지 올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자리를 떠난 전직 대통령을 너그럽게 평가해준
것인지, 아니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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