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초딩’ 아들과 신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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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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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신문을 읽은 적이 있는가? 기자의 지인(知人)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를 이 지면에 옮겨 써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그리고 ‘1인칭 화법’으로 그의 경험과 고백을 충실하게 옮긴다.

나는 두 달 전부터 아들과 함께 신문을 읽는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다. 먼저 아빠가 집에서 보는 신문에서 매일 5개의 기사를 읽도록 숙제를 내준다. 2개는 아빠가 정하고 3개는 아이가 선택한다. 나는 정치부터 문화까지 다양하게 고르지만 아이는 보통 스포츠 기사를 선택한다.

‘정보의 보고’ 탐구 두달만에

이를 바탕으로 주말에 아이와 1∼2시간 대화한다. 보통 “이 기사가 말하려는 게 뭘까. 1분 안에 설명해보겠니”라는 말로 시작한다. 어려운 부분은 아빠가 보충설명을 해준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매우 만족스럽다.

첫째, 교과서 속에 화석처럼 무미건조하게 말라붙어 있던 내용이 기사를 통해 생생한 현실로 변신한다. 가령 인사청문회 기사를 놓고 ‘왜 국회의원들은 후보자들에게 따지고 저렇게 몰아붙일까, 저 사람들은 왜 저리 쩔쩔맬까, 그런 권한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를 묻는다.

세금 기사를 놓고는 ‘왜 세금을 내야 하나, 국가는 무슨 근거로 네 돈을 강제로 빼앗나, 너는 왜 그에 복종해야 하나’ 등 제법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빠인 내 생각도 함께 깊어진다. 학창시절 다짜고짜 외웠던 내용을 압축파일 풀듯 이리저리 풀어헤쳐보는 것이다. 모든 기사가 사례 연구의 소재가 된다.

둘째, 아이가 사안에 대해 ①팩트로 ②데이터로 ③논리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야구 얘기를 할 때 예전 같으면 “저 사람 잘하는데…멋있다” 정도의 언급이었지만, 한두 달 만에 “홍길동 선수, ○할 ○푼 타율에다 수비도 좋아서 이번 아시아경기 대표단에 선발된대요” 식으로 말하게 됐다. 놀라운 변화다.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아이와 대화가 많아졌다. 느닷없이 애를 불러서는 “잠깐 앉아봐. 우리 경제 얘기 좀 하자” 이거 얼마나 어색한가? 잘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문을 읽으면서부터는 대화하고 싶은 주제에 따라 적절한 기사를 고르면 된다. 학교 얘기도 좋고, 문화예술 얘기도 좋고….

신문은 정보의 보고(寶庫)다. 훈련된 기자들이 세상의 중요한 사건을 애써 찾아 정선하고 요약해 집까지 가져다준다. 여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세상의 모든 분야가 망라된다. 스트레이트 기사도 있고 기획 기사도 있으며 칼럼도, 사설도, 주말섹션도 있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광고도 훌륭한 대화 소재다.

그런데 단돈 600원이다. 아이들은 이 600원짜리 창을 통해 앉아서 세상을 접하는 것이다. 특히 종이신문은 인터넷과 게임에 이끌려 활자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읽기’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신문기사는 1건의 분량이 책보다 짧아 접근하는 데 부담도 덜하다.

논리적 사고 늘며 세상 보는 눈 떠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NIE(Newspaper In Education·신문을 통한 교육)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 각국이 하고 있는 일이다. 신문을 통해 ‘읽는 습관’을 기르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시사문제에도 눈뜨게 해주는 일석이조의 운동이다.

신문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들의 읽기 싫어하는 태도다. 아이들은 점점 종이에서 멀어지고 있다. 컴퓨터에서 ‘단타 댓글’이나 읽고 게임에 열중한다. 그래서 더욱 신문교육이 절실하다.

시작이 가장 힘들다. 처음엔 상당한 강도의 설득과 권유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갈 길은 더 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자(父子)간 신뢰와 공감이 형성되기도 한다. 시작해보라. 신문을 매개로 다양한 대화를 시도해보라. 그리고 아이의 변화를 체험해보시라. 지금 당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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