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의 호랑이’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재정위기와 경기침체의 중병(重病)에 걸려 허덕이고 있다. 올해 아일랜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전망치는 32%로 유럽연합(EU) 권고치(3%)의 10배에 이른다. 실질 경제성장률은 2008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로 뒷걸음질을 칠 것이 확실시된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아일랜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금융과 정보기술(IT) 중심의 빠른 경제성장을 통해 도약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과 영어권 국가라는 이점을 활용해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0년 1만 달러에서 한때 5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영국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것이 아킬레스건이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아일랜드에 치명타를 입혔다. 부동산과 금융 산업 거품 붕괴, 외자 이탈에 따른 아일랜드 금융권의 손실 규모는 800억 유로(약 124조 원)로 추정된다. 실업률은 13.2%로 높아졌다. IT 분야 등의 해외 기업은 인도 등 임금이 더 싼 국가로 옮겨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8년 “아일랜드가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분배 중시 정책으로 전환한 것도 성장 잠재력을 끌어내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아일랜드의 현실은 금융과 서비스업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이 취약한 경제, 외국자본에만 기대는 경제가 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아일랜드가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 ‘한물갔다’는 평가를 듣던 제조업 강국 독일이 최근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복귀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당초 예상한 1.3%에서 3.0%로 높아졌다. 일찍이 “제조업은 영원하다”라고 강조했던 마키노 노보루 전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장의 통찰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도 전자 자동차 화학 철강 조선 등 제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에 힘입어 글로벌 경제위기의 충격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과거 우리가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면서 모델로 삼았던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두바이처럼 금융업에만 치중했던 나라는 모두 어려워졌다”며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업으로 쏠리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과 서비스업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제조업의 강점을 살리고 강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