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많은 수험생이 “EBS의 수능강의에서 70% 이상 출제한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말만 믿다가 낭패를 봤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올해 3월 당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올해 수능부터 EBS 수능강의에서 70%를 연계해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EBS 홈페이지 접속이 폭주했고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EBS에서 펴낸 교재로 반복학습을 했다.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들 중에는 “문제 유형이 EBS 교재하고 달라 까다롭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가채점 1등급 구분점수 추정치도 10여 점씩 떨어졌다. 안태인 출제위원장은 “EBS와 연계된 문제라도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어렵게 출제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수능이 어려워졌으며 이로 인해 또 사교육 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EBS 출제가 학생들의 학습방법을 그르쳐 놓고 있다는 관점도 있다. 기본 개념과 원리를 공부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EBS 교재의 문제와 답만 외우느라 기초 공부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EBS 교재도 단순 문제풀이 위주여서 약간 응용하거나 EBS 교재 밖에서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교육당국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과다한 사교육비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도 장애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교육의 본질을 사교육 잡기로 뒤바꿔놓은 지금의 대학입시 정책은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학교 수업도 EBS 강의 때문에 권위를 잃고 있다. 일부 학교에선 EBS 교재 지문과 해답을 외우게 하면서 EBS가 공교육의 몸통이 되다시피 했다. 학원가에서는 100가지가 넘는 EBS 교재를 요약 정리한 기획특강이 판을 친다. EBS 참여강사의 사교육업체 매출도 늘어났다. 이번 수능에서 어려운 문제는 EBS 교재 밖에서 많이 나와 사교육이 더 판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교육정책의 기본은 학교 수업에서 기본 개념과 원리를 충실히 가르치는 것이다. 수능은 ‘주입식 암기식 사교육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도록 출제한다’는 대원칙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알아보는 시험으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받고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 방향으로 수능이 출제돼야만 공교육을 살리고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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