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로 이름이 바뀌어온 그룹 컨트롤타워를 폐지한 지 2년 5개월 만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조직을 부활시킨다. 삼성 측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그룹 전체의 힘을 모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강점은 자발적인 위기의식을 통해 임직원의 열의를 끌어내는 전략이다. 이번에도 이건희 회장은 그룹 내에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새 컨트롤타워에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으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 회장은 올해 3월 경영에 복귀한 이후 “삼성도 어찌될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현재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를 대체할 만한 신수종(新樹種)사업이 불확실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삼성이 친환경산업 바이오 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동력을 선점하지 않고는 글로벌 강자가 될 수 없다. 대대적인 체제 개편이 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그룹 컨트롤타워의 운용 여부는 기업이 스스로 결정할 몫이다. 업종이나 기업문화에 따라 기업 나름대로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지배구조를 선택해 경영실적과 주가, 사회적 기여 등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면 된다. 기업의 지배구조로 기업의 생사나 성패가 좌우될 수 있다. 정부가 과거처럼 ‘그룹 기획실을 구조조정본부로 바꾸라’는 식으로 조직의 명칭과 역할까지 간섭한다면 시장경제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이번 조직 개편은 후계 경영구도와 관련돼 있다.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부사장은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할 예정이다. 그룹의 새 컨트롤타워는 이 부사장의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임무도 맡는다. 과거에 전략기획실과 구조조정본부를 지휘했던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김순택 부회장이 새 조직을 총괄한다. 올해 말 대대적인 세대교체 인사와 함께 ‘이재용 체제’ 다지기가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직 개편에 대해 ‘밀실 황제경영의 부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 전략기획실이 비자금 조성과 선거자금 제공 등 스캔들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런 사건의 여파로 2008년 전략기획실을 폐지하고 계열사의 독립경영체제로 전환해 그룹의 장기전략 수립이나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경영 결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의 새 컨트롤타워는 과거의 떳떳하지 못한 관행과 단절해야 한다. 삼성은 건전한 지배구조와 투명경영 준법경영은 물론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