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황석영 ‘강남夢’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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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고등학생 시절에 ‘삼포 가는 길’(1973년)을 읽고 강렬한 인상이 남아 지금도 황석영이라는 이름 석자를 들으면 이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어느 문학평론가는 김승옥의 ‘무진기행’(1964년)과 ‘삼포 가는 길’을 그 시대 한국의 대표 단편으로 꼽으며 무진에서 삼포까지 가는 데 9년이 걸렸다고 썼다. 무진과 삼포는 상상 속의 지명이지만 1960, 70년대 독자들에게는 지도에 나오는 실제 지명처럼 추억을 지니고 있다.

주말에 황석영의 작품 ‘강남몽(夢)’을 한달음에 읽었다. 황석영의 소설 4장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조성식 저)를 얼마나 베꼈는지는 신동아 11, 12월호에 상세히 소개됐다. 문장을 거의 통째로 옮겨놓아도 황 씨 말대로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된다면 소설은 참 편리한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황 씨는 ‘강남몽이 한국 자본주의 현대사에 관한 일종의 다큐소설’이라며 ‘소설의 역사물이나 시대물은 역사적 기록이나 신문잡지의 기사나 사실자료를 취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이명원 씨는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소설적 인물과 사건을 상상하고 창안하는 창조적 작가의 고된 수고 대신, 자료의 재구성이나 조립에 시종한다면 그것은 서사기술자에 불과하다’며 강남몽을 ‘조립소설’이라고 질타했다. 황 씨로서는 아픈 충고였을 것이다.

‘해전사’의 오류 그대로 답습

강남몽에 등장하는 대성백화점은 삼풍백화점에서 모델을 빌려왔다. 대성백화점 김진 사장은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일본군 헌병대 사환, 특무대 보조원을 지내고 광복 후 남으로 내려와 미국 정보기관 요원으로 일하다 미군의 건설공사로 부를 이루었다. 강남몽은 한국경제 기적의 상징인 강남을 일제 밀정과 투기꾼과 룸살롱 마담과 조폭의 무대로 설정해놓고 대성백화점의 붕괴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 현대사’라면 전후의 폐허에서 피땀으로 이룬 ‘한강의 기적’은 너무 무참해진다.

강남몽 2장의 시대적 배경 설명은 소설로 풀어쓴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일본군과 일제 경찰에 부역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도권을 잡고 반공을 무기로 제주도4·3사건, 대구 좌익폭동, 여순 반란사건 관련자와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다는 줄거리다. 황 씨는 신동아 보도로 표절 논란이 일자 강남몽 18쇄(11월 15일 인쇄)부터 참고 서적을 밝혔다. 그중에는 해전사와 함께 ‘해방 직후의 민족문제와 사회운동’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가 들어있다.

고 김일영 교수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의 지적 헤게모니는 커밍스의 아이들에 의해 장악됐다’며 ‘그들에게 한국 현대사는 반민중 반민족 반민주의 역사로서 오욕의 역사이며 지우고 싶은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커밍스는 6·25전쟁을 ‘자연발생적 내전’이라고 주장했지만 소련이 붕괴한 뒤에 나온 극비문서들에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을 방문해 스탈린 마오쩌둥과 남침을 협의한 전후 사정이 상세히 나와 있다. 커밍스의 학문적 기반은 이것으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전사의 골자는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를 대거 등용해 반민족적 성격이 강했고 단독정부 수립(대한민국 건국)이 분단 고착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소련 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보다 훨씬 앞선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해 사실상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강남몽의 참고서적은 이처럼 일방적으로 북쪽을 편들거나 핵심 설정이 오류로 판명된 책들이다.

앙드레 지드는 한때 “나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종교적 신념과 같다. 그것은 인류를 위한 구원의 약속”이라고 썼을 만큼 공산주의를 지지했다. 하지만 소련작가동맹의 초청으로 소련을 돌아보고 나서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1936년 ‘소련기행’을 통해 공산주의의 폐쇄성과 획일주의를 통렬히 비판해 사회주의자 친구들을 잃었다. 지드는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환상 깨고 진실 쓴 앙드레지드

황 씨는 누구보다도 북한의 현실을 깊숙이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황 씨는 1989년 3월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해 문익환 목사와 함께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그는 귀국해 감옥생활을 하고 나온 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북한방문기를 펴냈지만 그 책의 어디에도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인권유린과 굶주림 그리고 우상화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자유 민주주의 경제 인권 복지 같은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가 경탄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반면에 북은 세계 최악의 국가군으로 분류된다. 위대한 작가라면 지드처럼 동시대를 진실하게 기록해야 한다. 나는 작가의 다큐소설 작법을 존중한다. 작가도 내 독법(讀法)을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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